1883년 계미민요 주도 허사겸선생 등 8분의 위패 봉안



  • - 창의사 준공식 및 위패 봉안제 거행

    완도군(군수 김종식) 및 사단법인 창의사허사겸보전회 주관으로 1883년 계미민요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의사허사겸선생 등 8분의 위패를 모시는 창의사를 완공하여 완도군수를 비롯한 기관단체장들이 참석 사당 준공식 및 위패 봉안제를 거행했다.

    이번에 새로이 지어진 창의사는 완도군 군외면 당인리에 있는 허사겸선생의 묘소 건너편 국도변에 위치한 전통 한옥건물(65㎡)로 토지매입비 등 순수 군비 2억 4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2007년 12월 착공 지난 8월 20일 건물을 완공하여 준공식을 갖게 되었다

    계미민요는 115년 전 1883년 현재 완도읍에 설치된 가리포진 첨사로 있던 이상돈의 백성들에 대한 수탈과 학정에 대하여 군외면 당인리에 살고 있던 허사겸선생을 비롯한 8분의 의인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의연히 일어서 포악한 이상돈 첨사를 해남을 축출하고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고 있은 무고한 백성을 석방시켰음은 물론 지역자치 행정기구인 향도청을 설치하여 민심을 안정시키는 등의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관군에 의하여 진압되어 주모자로 지목된 허사겸선생은 1884년 강진 병영에서 27세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나머지 7분 또한 심한 고문과 귀양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었다. 계미민요는 동학농민전쟁보다 10여년 빠른 민중의거로 역사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위패 봉안제에서는 계미민요 당시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허사겸선생을 비롯한 8분의 위패를 사당에 정중히 모셔 그 분들의 큰 뜻을 기렸다.

    <완도군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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