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6군의 비극은 벌교시승격 실패 때문이다~!
2009.02.07 土 13:23
만약, 1960년대 말, 벌교읍이 어떻게 손을 써서라도 낙안군 복원운동과 벌교시승격에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의 전남동부6군이 아닐지도 모를 것이었다.

그렇다면 교통망 확충은 빨랐을 것이고 인구도 벌써 100만명이나 넘었을지도 모르는 판국이지 아니한가? 심지어 곡성 자연스럽게 동부생활권으로 가게되어 7군시대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판일지도 몰랐을 것이고 벌교와 보성이 지금처럼 싸우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순천,광양을 제외한 다른지역의 인구가 감소되는 상황에서 원인을 찾았지만 말이다.

벌교의 시승격운둥이나 낙안군복원운동에 성공했더라면...... 그결과는 막대한 것이 아닌가?

1. 전남동부권과 목포-광주권간의 세력균형이 깨지지 않고 지금처럼 덜 다투었을 것이고(더 나아가 호남과 영남간의 지역균형도 조차 깨지지 않았을 것이다.)
2. 국회선거구가 줄어드는 것을 최소화 되었으며 인구 200만명선 붕괴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벌교가 성공했으면 벌교-보성, 고흥이나 고흥-보성, 벌교-순천 갑.을이었을지도 모를 것이다.)
3. 전남 중.남부권의 발전으로까지 파급효과가 되어 지금의 화순군이 진작에 시승격 될것이고 조성면이나 율어면도 진작에 읍이 되었을 것이다.
4. 교통망확충이 활발히되어 지금의 교통망 모습이 아닌 더 발전된 모습일지도 모를 것이다.
5. 낙안군 복군운동에 성공했을 경우, 벌교는 고흥군 동강면, 낙안면일부를 합쳐 시승격에 성공해 훗날 낙안군과 합쳐 낙안시의 모습일것이다.
그외는 앞의 내용에 써져 있어 더 할글도 없지만.......

이유는 아는대로 글을 올렸다. 벌교의 시승격이나 낙안군 복원운동이 성공되었다면 지금의 전남 현실이겠는가? 일제에 대항했다며 행정구역까지 무자비한 개편까지 당하며 고통을 당한 벌교와 낙안의 현실이라서...... 낙안군이 공중분해가 아니었다면 지금 동부6군의 기형적인 모습이 아닐것이다.

헐뜯는 것이 아니지만, 역사에 대한 평가로서 과거의 실패를 거울로 삼고 내일을 위한 새로운 생각과 재도약이 제공될수 있는 차원에서 생각되어야 한다.

지금, 도청이나 기업도시나 모든것이 서부권에만 집중된 현실속에서....... 정신을 더 차려도 시원치 않는 판에 역사의 한장면 마저 잊어버리면 절대로 안된다. 벌교도 그 나름의 잘못이 있어 60년대 말, 낙안면과 통합안되어 시승격되지 못해 동강면이라도 합쳤어야 시승격되어 당당한 벌교시가 되어 구 낙안군과 합친 모습으로 나왔을 것인데 그렇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정리해 보면 벌교의 시승격이나 낙안군 복군운동의 파급효과로서는 막대할지도 모르는 중대 평가이지 않겠는가? 지금이라도 미궁의 역사에대해 재평가,조명 그 진상을 밝혀져야 한다.

전남 동부6군 역사의 한장면이 잊혀지는 순간 어쩌고보면 지역의 위기현상이 일어났지 않는가? 역사가 없는 지역은 살아날수 없는 것처럼......

지금이라도 더더욱 정신을 차려 동부6군 전체의 차원(동부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하나로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한다. 또한 전남 동부6군의 시군청과 시군의회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으로서 벌교읍의 시승격운동, 낙안군복원운동사건에대해 진상규명하고 평가하며 잃어버린 역사의 한장면을 되찾아야 한다.(순천이든 벌교든, 여수든 가릴것 없이 반드시 동부6군중에 한곳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것이다~! →당사지역인 벌교는 말할것도 없이 순천시나 보성군에 도움을 얻어서라도......)

또한, 전남동부6군이 다시 일어날수 있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고 말이다.

곡성을 어떻게 해서라도 교통망을 직선화 시켜서라도 전남동부권 일원으로 편입되는데도 성공시켜야 할것이고 말이다. 그렇게되면 동부7군시대가 될수 있다.

벌교역사 즉 시승격운동과 낙안군 복원운동에 관련해서 반드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합니다.

남도TV 자유게시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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