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간 해바라기 " , 박정희 타도 = 남민전 이재오를 퇴출하라 !!!!!!!!!
2009.07.13 月 11:22


" 겨울꽃" , " 통일의 꽃 " , " 빨간 해바라기 " , 박정희 타도 = 남민전 이재오를 퇴출하라 !!!!!!!!!


민중당 정신 진보투사 , 신영복 만세 이재오를 축출하라 !!!!!!!






운동권 한나라당 = 짝퉁 열우당 = 대한민국멸망 !!!!!!!!!


운동권 한나라당 = 운동권 대한민국 완전점령 망국 !!!!!!!






한나라를 탈환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지켜야 합니다.




북녘 동포를 자유해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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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의원은 사실상 ‘2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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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시장 캠프는 서울시장 재임시절 측근들과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선두에 포진해 있고, 이재오 최고위원이 캠프의 막후 좌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최고위원은 당 최고위원이어서 선대본부에서 공식 직책은 없지만 이 전 시장의 '동업자'라는 말도 들을 만큼 캠프내 영향력이 크다. 사실상 '2인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이 최고위원의 독선적인 성격과 영향력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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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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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부의장과 함께 조직업무를 총괄할 이재오 의원은 사실상 ‘2인자’다. 3선 의원에다 워낙 마당발이어서 캠프 외곽에서 부위원장으로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예정이다. 이 의원은 “직책은 무슨, 내가 직책을 맡는다고 일하고 안 맡는다고 안 하나”라고 말했다. 캠프 내 대표적인 ‘매파’로 얼마 전 당 내홍 사태 때 최고위원직 사퇴 카드를 던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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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 이재오 중앙대학교 제적 (한일회담 반대 학생주도)


학력

1963 경북 영양 고등학교 졸업
1964 중앙대학교 입학
1965 중앙대학교 제적 (한일회담 반대 학생주도)


[...1964년 6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될때까지 이재오는 연일 데모로 날을 지샜다. ...2년간의 줄기찬 학생운동에도 불구하고 1965년 8월 26일에 위수령이 내려져 한일회담은 군사정권의 뜻대로 타결되었고, 이재오는 8월 30일 학교에서 제적된다. 그리고 징집영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민통련에서 민족통일위원장
해방 후 최대의 재야 조직인 전민련 에서 조국통일위원장
제1회 범민족대회 추진위원장 등 재야시절 통일 문제는 내가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다....]










2003-03-07 이재오 = [...나는 (아직도) 진보주의자다. 나는 한번도 내가 보수주의자라고 말해본 적이 없다. ....]




[.....한나라당 대표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재오 의원은 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중이 정치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출발했고, 지금까지 그 정신에서 조금도 후퇴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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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수가 아니라 진보주의자" / 김정훈 김용남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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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은 이재오 의원을 민중당 창당멤버로 기억하면서 그때의 정신을 계속 견지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그런 정신에서 어긋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김대중씨를 지지하는 사람이 내가 김대중씨를 공격하니까 '자기도 같이 민주화 운동 해놓고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비판하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과거에 민주화 운동 같이 했다고 해서 지금 부정부패와 관련돼 있는 것을 봐주라는 말인가.

내가 민중당 사무총장을 하면서 적어도 민중이 정치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출발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부패 없는 세상, 권력의 이름으로 부패한 것을 막는 것 아닌가. 그게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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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진보정당 활동을 했는데 지금에 와서 스스로 '건전한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것인가.

"나는 (아직도) 진보주의자다. 나는 한번도 내가 보수주의자라고 말해본 적이 없다. ....]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110997


"나는 여전히 민중당 정신 간직한 진보주의자"
[한나라당 당권 주자 연쇄인터뷰(2)] 이재오 의원 ②









* 2007.2. [...우리는 사실 국회의원 하려고 민중당 만든 것이 아니고 민주화 운동하려고 민중당을 만든 것입니다....]



[... 그렇게 활동을 하다가 90년에 민중당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걸 왜 만들었냐면 그냥 민주화 운동을 하면 자꾸 잡아가니까요. 그래서 안 잡혀가는 합법적인 민주화 운동이 없냐고 했더니 장기표씨가 그랬던가 누가 헌법에 보장된 정당을 만들면 함부로 못 잡아 가니까 정당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재야가 독자적으로 민중당을 만든 것입니다. .....

우리는 사실 국회의원 하려고 민중당 만든 것이 아니고 민주화 운동 하려고 민중당을 만든 것입니다....]



[뉴폴리젠]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 간담회 1부

인터뷰 2007/02/09













2005.1.28. [ 남민전 홍세화 -- 이재오 ]




[..홍 =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이란 말엔 결국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반역사적인 성격에 대한 문제제기가 담겨 있는 겁니다. 이 의원은 남민전에 가담했던 자신의 과거를 지금은 부정하시는 겁니까? ...

... 이 의원은 웃음을 섞어가며 한나라당을 바꾸는 구실에 대해 말하면서도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다’고 몸을 낮췄다. ...]


[...과거사나 5·16 이후에 대해서도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죠. 그 사람들과 싸워야겠죠..]


http://www.hongsehwa.pe.kr/bbs/view.php?id=articl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61

한겨레펌 (2005-01-28 )




* [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운동권붉은반역과 싸울수 없습니다. 박정희를 부정하고 있읍니다. 한나라에 맞지 않습니다. ]



* 이재오 , 홍세화 모두 남민전 관련자입니다.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12465&C_CC=AZ










2003-05-11 [ 노무현은 "동지"입니다. ]


"노무현 동지께 드리는 4가지 고언"



[...이재오 의원은 1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한나라당과 노무현 동지께 드린다'는 글을 통해 특히 노 대통령에게 4가지 사항을 고언했다.

이 의원은 "지난 칠흑 같은 권위주의 시대에 같은 공기를 함께 호흡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아직은 동지의 호칭을 버리고 싶지 않다"고 애정을 표시한 뒤 "노무현 동지도 밖으로 돌린 눈을 이제 안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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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동지, 동지의 임기동안 동지가 이끄는 정권의 주체들이 권력의 이름으로 부정과 부패에 관련되지 않도록, 그리고 적어도 권력형 비리와 부패만이라도 청산해 주실 것을 이 땅의 야당정치인으로서 진정으로 바랍니다. 동지라고 생각하는 당신께 처음 드리는 고언입니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122250

이재오 "노무현 동지께 드리는 4가지 고언"






* 1991. [ 민중당 이재오 -- 후원회원 김남주 -- 박원순 -- 임헌영 -- 인명진 ]



[...지구당 창당 1주년이 되는 1991년 9월21일 후원회 발족기사가 각 신문에 실렸다. 후원회 회장은 신상웅 교수였고 회원으로는 계훈제(재야원로), 이효재(이화여대 교수), 한완상(서울대 교수), 구중서(수원대 교수), 유인호(중앙대 교수), ..., 조준희(변호사), 박원순(변호사),..., 이호철(소설가), 김남주(시인), ..., 김성동(소설가), 임헌영(문학평론가), ..., 김용태(화가), 김동완(목사), 인명진(목사), 등 1백40명이었다. ....]










* 2005.7. 소위 "평양 남북작가대회" = [ 김남주 -- 황석영 -- 고은 -- 조선작가동맹 김병훈 ]



[...오전 10시 장백폭포 그림이 시원하게 걸린 국내선 출국장 앞에서 출발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염무웅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은 결연한 목소리로 출국성명을 읽었고 대표단들도 숙연한 분위기와 결의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워지는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준비해서 걸어둔 깃발에는 김남주의 시 한 귀절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남과 북의 끊어진 철길 위에도 쓴다 조국은 하나다' 아, 늘 끓는 목소리로 조국은 하나다라고 외쳤던 고인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또 한 깃발에는 기차표를 끊어다오! 라고 외치고 있었다. ...]

2005-07-26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70445


60년 짙은 안개를 뚫은 남북작가들
[평양 남북작가대회 참가기 ①] 사람아, 이 사람들아!






* 2005.7.29. [...그리고 우리들은 김일성 주석의 대형 초상화로 유명한 평양공항 앞에 서서 도착 성명을 발표했다.

황석영 선생이 읽은 도착 성명은 "우리는 지금 옛 고구려의 도읍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엄숙하고도 벅찬 감정의 서시였다. 평양공항 청사 앞에는 '민족작가대회 참가자들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쓴 빨간 바탕의 플래카드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71377






* 2005.8. [... 황석영 선생이 말없이 고 선생을 껴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게 신호탄이었습니다.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78&article_id=0000017674§ion_id=001&menu_id=001


조국은 하나다

[국정브리핑 2005-08-2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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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이었습니다. 백두산 아래 삼지연 베개봉 호텔에서 남북의 작가들이 함께 시낭송회 연습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날 오후에 현지에서 장문의 시를 썼다며 고은 선생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시낭송을 끝내자, 가까이 앉아 있던 황석영 선생이 말없이 고 선생을 껴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게 신호탄이었습니다.


소설 ‘빨치산의 딸’을 쓴 소설가 정지아가 이미 고인이 된 김남주의 시 ‘조국은 하나다’를 읽을 때, 좀처럼 눈물을 흘릴 것 같지 않던 소설가 정도상이 소리 죽여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더니 급기야 한쪽에서 얼굴을 감싸쥐고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자리를 같이 한 남북의 시인과 소설가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고는 눈시울이 다들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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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8. [...고은 선생은 조선작가동맹 김병훈 위원장을 뜨겁게 끌어안았고 ...]



백두산에서 다시 묻다, "조국은 하나인가?"
평양 북남작가대회 참가기(17) 사람아, 이 사람들아

정용국(yong5801) 기자




해가 이미 병사봉 뒤에서 떠오른 지 한참이나 되었는데도 장군봉 위에 있는 보름달은 사라지지 않고 해와 달이 함께 하는 묘한 시간이 한 시간여 계속 되었다.

안도현 시인은 '사랑을 노래함'을 낭송하였고 '청춘송가' '통일연가' 등으로 조선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대표적인 소설가 남대현은 인사말을 통해 6·15 공동선언의 실천만이 우리들의 갈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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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지아가 나와서 김남주 시인의 '조국은 하나다'를 애절하게 낭송했다. 김남주가 살아 있었을 때 그가 낭송하는 그 시에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곤 했는데 이 시를 천지에서 다시 듣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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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하나다

- 김남주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 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양키 점령군의 탱크 앞에서
자본과 권력의 총구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제 나는 쓰리라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언어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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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카우보이와 자본가의 국경
삼팔선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식민지 낮과 밤이 쌓아올린
분단의 벽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압제와 착취가 날조해낸 허위의 벽
반공이데올로기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내걸리라
지상에 깃대를 세워 하늘 높이에
나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키가 장대 같다는 양키의 손가락 끝도
가난의 등에 주춧돌을 올려놓고 그 위에
거재를 쌓아 올린 부자들의 빌딩도
언제고 끝내는 가진 자들의 형제였던 교회의 첨탑도
감히 범접을 못하도록
최후의 깃발처럼 내걸리라

자유를 사랑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는
식민지 모든 인민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남과 북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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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날 현장은 열의와 환호로 가득했다. 다함께 '조국통일만세'를 삼창할 때에는 그야말로 천지가 요동치는 것 같았다.


고은 선생은 조선작가동맹 김병훈 위원장을 뜨겁게 끌어안았고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누구든 옆의 사람들과 손을 잡거나 부둥켜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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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1












2006.3.13. [ 노정권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읍니다. ]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12465&C_CC=AZ


"경애하는 수령 金日成 원수님..." 남민전의 충성서신 中



金日成주의 내건 ‘남민전’민주화 인정 파문

主體思想 최초 도입, 80년대 좌익확산 뿌리
공범 임헌영 氏, 출소 후 친일청산 전개




노무현 정권이 1979년 말 검거된 共産혁명조직인‘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관련자들을‘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 물의를 빚고 있다.

대통령 직속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이하 심의회, 위원장 하경철)는 3월13일 제162차 심의를 개최, 남민전 사건 관련 신청자 중 29명에 대해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유죄판결 받은 것으로 인정했다.



심의회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대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 남민전 활동에 대해 “유신체제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민주정부를 세우자는 행위”로 각각 판단했다.


심의위는 특히 △자금마련을 위해 고위공직자 집에 들어가 금품을 훔친‘봉화산작전’(1978.12.5) △동아그룹 최원석 전회장 집에 들어가 경비원을 칼로 찌른 ‘땅벌사건’(1979.4.27) △금은방을 털려다 미수에 그친 ‘지에스작전’(1979.3.5) △1978년 7, 8월경 예비군 훈련장에서 카빈 소총 1정을 군부대 밖으로 빼돌린 총기 밀반출 사건 역시 “궁극적 목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항거하기 위한 민주화운동의 일환”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남민전이 金日成 주체사상(主體思想)을 내걸고 공산(共産)혁명을 기도했던 단체였다는 점에서, 盧 정권의 이 같은 조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조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남민전 사건이 종료된 후인 81년 10월 대검찰청은 2200여 면에 달하는 공소장과 판결문 등을 기초로 ‘좌익사건실록’제12권을 발간했다.

실록에 따르면, 남민전은“주체사상(主體思想)을 확립하자”를 첫 번째로 하는 전사(戰士)생활 규범10조를 마련하는 등 金日成 주체사상을 표방한 남한 내 최초의 지하조직이었다. 조직원들의 소위 ‘교양’ 역시 평양방송을 종합한 주체사상 자료 등이 사용됐다.



남민전은 북한과 연계된 조직이었다. 남민전의 주범 중 한명인 안용웅(安龍雄)은 일본을 거쳐 월북해 金日成에게 사업보고서와 서신을 제출했으며, 이는 대남방송에 의해서도 확인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민전은 공산혁명이 이뤄지면 북한군에 지원 요청할 것을 모의했었고, 혁명이 성공하면 중앙청에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전선기(戰線旗)’를 준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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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사건실록은 남민전이 金日成에게 바치는 서신을 수록하고 있다. 1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서신은“경애하는 수령 金日成 원수님께옵서 인도하는 조선민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품 안으로 안기는 영광스러운 조국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습니다”는 등 金日成에 대한 찬양과 숭배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계급적 적들을 증오하라. 철저히 증오하라"교육



남민전은 79년 대부분의 조직원이 검거됐지만 남민전이 운동권에 미친 영향은 지대(至大)했다.

우선 남민전 잔당들은 80년대 좌익세력에게 주체사상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을 공산화하기 위해서는 ‘반미(反美)’라는 反제국주의 투쟁이 중요하다는 남민전의 투쟁노선 역시 그대로 수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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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씨는 남민전 연루자인 시인 故 김남주로부터 공산주의 사상교육을 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김남주가 반복해 교육했던 내용 중 한 가지는 아래와 같다.

“계급적 적들을 증오하라. 철저히 증오하라.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을 철저히 죽여 없애는 것이다. 그 숫자는 200만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야만 혁명을 완전하게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민전 사건에 연루됐던 이수일, 임헌영, 홍세화, 권오헌 씨는 출소 후 각각 전교조(전 위원장) 활동, 친일청산(現 민족문제연구소장), 한겨레신문(現 시민편집인), 통일연대(현 국보법철폐특별위원장) 등의 활동을 벌여왔다.







* 37년 복역 간첩 장병락 = [...남민전 ... 사실은 사실이야. 우리랑 다 같은 사람들인데,...]



[....남민전 사람들이랑 같이 생활해 본 적이 있거든. 날조된 건 아닌데, 사실은 사실이야. 우리랑 다 같은 사람들인데, 83년도 교황이 왔을 때 어떤 신부가 당신들 석방될 때 전향하라 공작했거든. 가족들도 성화였고. 그래 다 해 버렸어. 그렇지만 결국 그 때 못 나왔거든. 89년인가 그 무렵에 나왔지. 남쪽에서 북과 관계되지 않고 자생적인 사람들,자생적인 좌익들 말야 이 사람들 거의 다 전향했어. 다들 그랬어.

통혁당 있잖아? 신영복이. 그 사람은 좀 나았는데, 결국은 꼬끄라졌어. 이념적으로도 쟁쟁한 사람들이라. 하지만 다 나가더라고. 북에서 온 사람들만 끝끝내 버틴거지. ....]



오딧세이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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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월동에 있는 <만남의 집>에서 장병락 씨를 만났다. 그의 이력은 다음과 같다.

- 1934. 7.25 원산시 와우동 출생. 원산공업중학교, 원산고급중학교 졸업.
- 1950. 6.23 해군하사관 학교 자원 입대. 전쟁 발발 후 보병으로 참전.
- 1959. 3. 제대와 동시에 당으로부터 소환.
- 1962. 3. 정치공작원 안내선의 기관장으로 남파(해상 안내원)
- 1962. 4. 5. 체포됨. 무기징역 선고 받고 37년 복역

1962년 이후 37년간 그의 이력은 보탤 게 없다. 37년간 그는 오직 한 곳에서, 하나의 일만 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34년생이면 예순 일곱이다. 37년간이니, 생의 1/2이상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이력에 보탤 게 생겼다. 다른 "비전향 장기수"들과 함께 그는 오는 9월 2일 북송(!)된다. 아니, 귀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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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3.15. [ 민변,참여연대,전국사제단,민가협,한총련,민노당 등의 "남민전 만세" 합창입니다. ]




[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 <성명> '남민전' 사건에 대한 민주화운동 인정을 환영하며

[연합뉴스 보도자료 2006-03-15 13:50]





'남민전' 사건에 대한 민주화운동 인정을 환영하며, 정부는 관련자에 대한 명예회복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젊음을 바친 수 많은 민주화운동 희생자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하고자 2000년 8월 민주화운동보상위원회(이하, 보상심의위)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보상심의위에서 2006년 3월 13일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이하, 남민전)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29명에 대하여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였다.

보상심의위원회가 구성되고 사건을 접수한 지 이미 5년이 경과되어 계속 심의가 보류되어 오다 이제야 비로소 민주화운동으로 심의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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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전 사건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1970년대 폭압적인 박정희 유신 독재에 맞서기 위하여 조직을 구성하고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수립하여 활동하여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힘찬 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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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 남민전 관련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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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심의위원회는 이번 심의에서 보류된 이재문, 신향식, 이해경 포함 남민전 사건 관련 21건에 대하여도 조속히 심의에 들어가 올바른 결정을 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이재문, 신향식 열사의 경우 민족민주 운동 진영에서 이미 열사로 인정되어 추모되고 있는 상황을 올바르게 인지하기 바란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하여 투쟁해 온 남민전 동지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한다!



2006년 3월 15일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상임대표: 강민조, 권오헌, 문영희, 박중기, 오종렬, 조준호, 정종열

민주화운동정신계승부산연대/.../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민주노동당/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언론운동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불교인권위/사월혁명회/.../실천불교전국승가회/.../인권운동사랑방/.../인혁당대책위원회/.../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전대협동우회/.../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참여연대/천주교인권위원회/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통일광장/학술단체협의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인권위원회/한국기독교사회선교협의회/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 2005.7.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총경 30명에 강연

[한겨레 2005-07-11 22:12]


“교황도 과거사 사과했다 경찰도 하는게 어떻겠냐”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을 진행 중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 소장이 11일 과거사에 대한 경찰의 공식 사죄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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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0.4. 통일연대 홈에 실린 조직표입니다. ]

* 통일연대 공동대표 임헌영

[ 2006.10.4. 통일연대 홈에 실려 있는 가입단체 ]

* 민족문제연구소


* 2005.8. [ 임헌영은 앞의 백두산 " 김남주 만세" 놀음에 참가하였읍니다. ]









* 2007.4.19. [ 김지하는 "대변혁"이 필요하다며 " 남조선사상 " 이란 것을 설교합니다. ]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05528


김지하 "지금은 정신·예술·사상·문화의 대변혁 필요"
[지역언론 별곡-186] 김지하 시인 '남조선 사상의 현대적 의의' 특강

박주현(parkjh)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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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2시 전북대 진수당 최명희홀에서 '남조선 사상의 현대적 의의'에 관한 주제로 열린 강의는 약 2시간 30분 동안 쉬지 않고 진행됐다. 주로 동학(東學)과 정역(正易), 증산(甑山)을 중심으로 한 세 가지 사상의 실체와 현대적 의미에 관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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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그는 본 강의에 앞서 "사람이 잘사는 세상, 좋은 세상으로 바뀌려면 정치·사회적 변혁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제 시대는 혁명이나 눈에 보이는 질서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때가 됐으며 정신, 예술, 사상, 문화의 대변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날 강조한 '남조선 사상'은 지역적 관점에서 조명되고 해석되어 졌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그는 '남조선 사상'에 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들이 따가웠던지 "오늘 말하려는 남조선은 경상, 충청, 전라(제주포함)의 삼남(三南)의 남조선을 일컫는다"고 말하면서 "오늘날 종말적 혼돈 이후에 새 세계의 개벽은 남조선 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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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전쟁이 미국의 굴욕적 패퇴로 종결되고 .... 크게 고무됐다.....]



반제·유신독재 타도나선 ‘지식인 戰士’들

[속보, 사설/칼럼] 2003년 12월 07일 (일)


=[실록 민주화 운동]‘남민전’ 사건=



‘1. 국제제국주의의 신식민지 체제와 그 앞잡이 박정희 유신독재를 타도하고 민족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연합정권 수립 2. 폭넓은 진보적 민주정치 실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강령)


부마시민항쟁과 10·26 박정희 시해사건을 바로 눈앞에 둔 1979년 10월9일,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이 전국 대부분 신문의 머리기사로 보도됐다. 그후 10월16일과 11월13일로 이어진 언론보도는 이 사건으로 검거된 84명에 대해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하여 폭력적인 방법으로 적화통일을 기도한 대규모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며, 무장 남파간첩과 관계는 없으나 ‘자생적 공산혁명세력’이라고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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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전 초기 맹아그룹이라 할 수 있는 이재문·신향식·김병권·안재구는 대구를 지역기반으로 성장하면서 8·15 해방과 4·19 민주혁명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다. 이들은 국제적으로는 75년 4월 베트남전쟁이 미국의 굴욕적 패퇴로 종결되고 반둥회의 등 제3세계 민족자주운동이 고양되고 있는 점에, 국내에서는 긴급조치 아래서도 ‘민주회복국민회의’ 결성 등으로 각계의 반유신운동이 불길처럼 일고 있는 점에 크게 고무됐다.


이들은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과 ‘반유신 민주화운동’을 지도하는 전국적 범위의 지도조직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76년 2월 강령과 규약을 확정하고, 남민전 준비위원회의 중앙조직을 발족한다. 사상·정견·신앙의 차이를 넘어 반제·반유신의 광범위한 통일전선 조직을 목표로 하고, 정보통치에 대항해 조직을 보존할 수 있도록 철저한 비합법·비공개조직으로 꾸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준비위는 반유신 민주화운동의 2원화를 꾀해 77년 1월 지도부 외에 ‘한국민주투쟁국민위원회’(민투)를 따로 구성하고 이후 대중들의 요구 수준을 보아 적기에 어느 정도의 합법조직으로 공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11월에는 기간부대라 할 ‘청년학생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78년 기관지 ‘민중의 소리’를 지하신문으로 발간한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교원극단을 토대로 ‘민주구국교원연맹’을 결성하게 된다. 79년 들어서는 학생뿐 아니라 노동자·농민까지로 조직을 확장해 2월과 9월 학생연맹과 농민연맹을 결성한다. 그러나 조직원은 대부분 청년층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때마침 3월에 윤보선·함석헌·김대중을 공동의장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이 결성돼 종교·학계·문화예술·언론·법조 등의 반유신 운동이 활기를 띠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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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전은 80년대 중반부터 진보적 사회과학계의 뜨거운 논쟁으로 발전했던 한국사회의 성격문제와 관련하여 일찍이 ‘미·일 등 국제제국주의에 의한 신식민지 체제’로 규정할 만큼 상당히 선구적이었다. 80년 4월 이재문은 재판부에 서면으로 최후진술서를 제출하는데, 그는 구한말의 양대 양요를 향한 투쟁에서 반외세투쟁의 시원을 찾아 이 운동의 역사가 동학농민전쟁, 의병운동, 일제하의 독립운동, 분단하의 통일운동, 군사독재하의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남민전의 주력군이라 할 수 있는 민투의 강령은 이를 실현할 당면 중심 과제로 ‘미·일 외세 및 매판세력과 이해가 일치하는 유신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모든 민족민주세력을 망라하여 ‘반독재민주혁명’을 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외세와 자주통일 노선을 견지한 남민전 지도부는 북한을 국가보안법상의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가 아닌, 통일운동의 민족적 동반세력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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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전에 관한 비사로는 ‘봉화산작전’ ‘땅벌작전’ ‘GS작전’ 등 이름이 근사한 일화들이 여럿 있다. 모두 자금 확보문제와 관련한 것들이다. 각각 재벌 2세, 동아건설 사장집, 종로2가 소재 보석상점 ‘보금장’(중앙정보부의 돈줄로 알려져 있었음)을 털어 부도덕한 재벌을 응징하면서 투쟁자금을 자력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중 2건은 실제 결행됐는데 아무런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이재문은 항소심에서 안재구, 최석진이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되자 둘을 와락 부둥켜 안고 흐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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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진이 중앙위원이 아님에도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것은 그가 남민전 조직원의 70%를 차지하는 청년학생위원회 총책으로 유인물 대량살포 등을 지휘했기 때문이다. 그는 10월30일 체포된 이후 가혹한 고문으로 기동도 못하는 상태에서 남영동 대공분실 화장실 창문을 뜯고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이후 재판을 받을 때에는 전신에 기브스를 한 상태에서 들것에 실려나오곤 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필경도구와 등사기를 구입해 자신의 비좁은 자취방에서 밤새 유인물을 등사하던 그때를 일생에서 가장 확고하고 빛나는 신념으로 살았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기획·집필에 참여한 사람-


유시춘(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이우재(자유기고가) 김남일(소설가) 황인성(인권운동가) 정재돈(농민운동가) 한상봉(자유기고가) 김명인(문학평론가) 최민희(민언련 사무총장) 박노승(경향신문 논설위원) 김정섭(" 미디어부 기자)


-독자제보를 기다립니다-


경향신문 미디어부(02-3701-1156~8)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02-3709-7646)













* [ 이재오 홈에 올려 있는 이재오의 시입니다. ]



http://www.leejo.net/board/viewbody.html?cid=&comment_code=board_bluesky_comment&mode=0&code=board_bluesky&page=3&number=65&keyfield=&key=


빨간 해바라기





태양을
따라가는
빨간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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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마음으로
밤을 세우고


태양에
도전하는
빨간 해바라기



어느 날 담 밑에 커 가는 해바라기를 보고 아빠가 생각난 대로 써본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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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옥중서신 - 긴터널푸른하늘 中












2004. [...이재오 의원은 ..."조국강토에 겨울꽃을 피우자, 통일의 꽃을 피우자"라고 말했다....]




[... 이재오 의원은 이날을 기념해 준비한 장문의 자작시 ‘겨울꽃’을 낭독하며 통일의 각오를 다졌다. ...]



금강산서 통일기원 합수제 열려

2004년 07월 04일 (일) 연합뉴스 tongil@tongilnews.com



(금강산=연합뉴스) 공동취재단 = 지난 2일부터 금강산을 방문중인 한나라당 국가발전전략연구회 소속 위원 24명은 4일 오전 9시 금강산 만물상 등산로 들머리 만상정에서 7.4 남북공동성명 32돌 기념 '통일염원 합수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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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발전연구회 통일기행' 추진위원장인 박계동 의원은 "지리산과 한라산 물이 금강산물과 만나 7천만 민족의 염원인 통일꾼이 되기를 다짐한다"고 말했다.

박위원은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용렬한 마음, 불신과 대립심, 슬픔과 한숨 등 이 모든 것을 말끔하게 씻어 달라"며 "남과 북이 하나되어 평화와 생명을 온 누리에 펼치게 하소서"라고 `통일기원 고유문'을 읽어내려갔다.


이재오 의원은 직접 지은 축시 '겨울꽃'에서 "오늘 금강산에 부는 바람이 한반도에 평화를 낳을 것"이라며 "조국강토에 겨울꽃을 피우자, 통일의 꽃을 피우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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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회 간사인 고진화 의원은 "17대 국회 임기중 남북관계의 진전을 이뤄야 한다"며 "지금껏 한나라당이 남북관계 진전에 기여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남남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한나라당 국가발전연구회가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금강산 통일기행과 합수제를 추진한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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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오 의원은 이날을 기념해 준비한 장문의 자작시 ‘겨울꽃’을 낭독하며 통일의 각오를 다졌다. ...]

[..박계동(朴啓東) 의원도 “이제 통일운동은 한나라당이 주도해야 하며, 주도할 것”이라면서...]


금강산 특구 단체방문에 나선 한나라당 국가발전연구회 소속 의원 25명은 4일 금강산 만물상 입구에서 ‘통일염원 남북합수제(合水祭)’를 갖고 통일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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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금강산 관광사업을 ‘대북 퍼주기’라고 비판하며 국회에서 반대 목소리를높였던 한나라당 의원들의 이날 모습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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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동(朴啓東) 의원도 “이제 통일운동은 한나라당이 주도해야 하며, 주도할 것”이라면서 “남과 북, 북과 남이 하나가 돼서 21세기 세계 속에 우뚝 서는 민족을 만들자”고 말했다.

또 이재오(李在五) 의원은 이날을 기념해 준비한 장문의 자작시 ‘겨울꽃’을 낭독하며 통일의 각오를 다졌다.

의원들은 행사를 마친 뒤 남한 8도에서 담아온 물을 금강산 계곡 물에 뿌리며통일을 염원했고 어깨동무를 하고 감격에 겨워하며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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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2004-07-04











2006.[...황 씨가 당시 방북 기간 동안 지은 시(詩)들을 모은 ´겨울꽃´(평양출판사)이란 시집 첫머리에 담긴 「금강산」이란 詩는 김정일이 몸소 살폈다고....]


http://www.independent.co.kr/news/n_view.html?kind=main&id=12779


"그가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

"남조선 청년학생으로는 첫 영광을"



2006-04-10




지난 2005년 만삭의 몸으로 평양을 방문, 공교롭게도 노동당 창건일인 10월 10일에 딸을 출산했던 황선(사진, 통일연대 대변인) 씨.

당시 일부 인터넷 매체는 "애낳은 것도 빨갱이 되더라" 등의 제목으로 황 씨에게 퍼부어지는 이념공세를 비판하는 모습을 취하기도 했었다.

이런 가운데 황 씨를 북한 김정일을 "경애"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하며, 그가 김정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던 남측 학생이었음을 밝힌, 북측의 주장으로 추정되는 글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지난 6일 범청학련 홈페이지(http://bchy.jinbo.net/) ´통일나누기´ 코너에 "애어린 통일사절 황선"이란 제목으로 게재된 이 글은, 황 씨가 8년전(1998년) 방북했을 당시의 일을 술회하고 있다.

글에 따르면, 황 씨는 "그가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으로부터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받는 열혈애국학생"이다.

황 씨가 당시 방북 기간 동안 지은 시(詩)들을 모은 ´겨울꽃´(평양출판사)이란 시집 첫머리에 담긴 「금강산」이란 詩는 김정일이 몸소 살폈다고 한다.

글은 "온 겨레가 하늘처럼 우러르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시작품을 직접 보여 드리고 높은 평가를 받는 영광을 지닌 것은 남조선 청년학생으로는 황선 대표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이 글 전문



애어린 통일사절



애어린 통일사절은 주체87(1998)년 8월 7일 평양을 방문하여 8.15통일대축전행사와 범청학련 북녘문화유적공동답사 및 공동학술토론회에 참가하고 11월 3일 판문점으로 귀환한 범청학련 남측본부 ≪한총련≫ 대표였던 황선학생이다.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고 축복하는것은 그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으로부터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받는 열혈애국학생이기 때문이다.


황선학생은 평양방문의 나날 주체성이 살아 숨 쉬고 민족성이 력력히 흘러 넘치는 인민대중중심의 정의로운 사회현실과 북녘겨레의 통일열망을 목격하면서 격양된 심정을 터뜨려 여러편의 시들을 썼다. 그 시들을 한데 묶어 출판한 책의 표제가 ≪겨울꽃≫이다.


그런데 영광스럽게도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그 시집의 첫 머리에 편집된 ≪금강산≫이라는 시를 몸소 보아 주시고 높이 평가해 주시는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안겨 주실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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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의 꽃으로 부활하소서" = '남녘 통일애국열사 추모제' ]



http://www.tongilnews.com/article.asp?mainflag=Y&menuid=101000&articleid=55314



"통일의 꽃으로 부활하소서"
회문산에서 '남녘 통일애국열사 추모제' 엄수


[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2005-05-29 오후 10:11:40




29일 오전 10시,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회문산 기슭 청소년수련원 연단에는 검은색 대형 천이 내걸렸다. 천에는 50여년을 숨죽여 살아남은 자들이 되살린, 먼저 간 '선배동지' 1,410명의 이름과 '무명열사'라는 네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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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뙤얕볕 아래 2시간 가량 계속된 추모제는 권낙기 대표의 선창에 따라 참가자들이 '민족공조, 반전평화, 통일애국' 3대공조를 주제로 만세 삼창을 하며 막을 내렸다.

이날 추모제는 통일광장, 전북통일연대, 순창민주연대(이상 공동주관), 전농전북도연맹, 민주노총전북본부, 전교조전북지부, 민주노동당전북도당, 전북평통사, 전북대총학생회, 고백교회생명평화자주통일선교위원회, 전북여성단체연합, 반미여성회전북지부, 민주주의민족통일전주완주연합이 공동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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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애국열사 명단 (개요)

전남도당(위원장 박영발, 658명), 전북도당(위원장 방준표, 381명), 충청(충남도당 위원장 박우현, 충북도당 위원장 송명헌, 125명), 영남(경남도당 위원장 남경우, 경북도당 위원장 박종근, 113명), 4지대(사령관 이현상, 69명), 옥중열사(64명) 그리고 무명열사. (총 1,410명)


제막 앞에서 아는 이름을 찾느라 웅성거리는 '빨치산'들을 진정시킨 권낙기 통일광장 공동대표가 200여 참가자들에게 '남녘 통일애국열사 추모제' 시작을 알렸다.


이어 임방규 통일광장 공동대표는 제단 앞에 막걸리 한 잔을 올린 뒤 제문을 봉독했다. 임 대표는 회문산 기슭에서 조촐한 상을 차려놓고 제를 올리게 된 사정을 영령들에게 고한 뒤, 일제 강점기에서 미군 강점기로 이어지는 시절 "합법으로 때로는 비합법까지 미제를 몰아내기 위해 줄기차게 싸웠던 열혈청년들"을 칭송했다..............................

또한 선배열사들을 "충직한 조직원으로 어려울 때마다 앞장섰다"고 기억하고 "모든 이들이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존경할 것이다"면서 선배열사들이 원했던 대로 "외세를 이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자주통일국가를 세울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전농 전북도연맹 송용기 의장은 "뼈를 저미고 살을 에는 님들의 처절했던 고통이 (6.15 통일 시대의) 길을 열었다"면서 "통일의 꽃으로 부활하소서, 그리하여 맥없이 서 있는 저 철조망을 밀어버리소서"라고 기원했다.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염경석 위원장은 "산 자들의 무관심과 비겁함이 열사들이 죽어서도 구천을 떠돌게 만들었다"라고 안타까워하고, 열사들의 희생으로 "남과 북, 해외 7천만 민족이 하나된 진정한 독립과 평화통일의 그 날은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


전북작가회의 문병학 시인은 "천하에 못된 짓하는 미 제국주의 양키놈 몰아내고 저 회문산 자락 구비구비 깃든 가신 님들 앞에 통일 조국을 안겨 드리겠다"고 노래했으며, 박종화 시인은 '나는 저 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로 시작하는 '지리산2'를 불렀다.....


□ 당시 기억나는 인상적인 일들이 있다면.

■ 이 일대가 해방구였지. 심지어 회문산 일대 빨치산들이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운동회를 하기도 했으니까.(웃음)

또 하나 생각나는 게 소년단이다. 기본계급 출신에다 빨치산 유자녀들이어서 물불 안가리고 싸웠어. 적들이 항공기로 때리고 46사단하고 남부 지구당을 치러 올 때 그걸 막아낸 게 소년단 3개 소대였지. 나는 그 때 19살이어서 그들을 지휘했지. 정말 잘 싸웠어................. ]










*


지리산 - 김지하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샆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저 대 밑에
저 산 밑에
지금도 흐를 붉은 피
지금도 저 벌판
저 산맥 굽이굽이
가득히 흘러
울부짓는 것이여
깃발이여
타는 눈동자 떠나던 흰옷들의 그 눈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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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내 가슴에 울부짓는 것들이여
얼어붙은 겨울 밑
시냇물 흐름처럼 지금도 살아 돌아와
이렇게 나를 못살게 두드리는 소리여
옛 노래여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샆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아아 지금도 살아서 내 가슴에 굽이친다
지리산이여
지리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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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3



[....작가 홍상화(65·사진) 씨가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의 반미(反美) 움직임과 주체사상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고 비판한 소설을 발표해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홍 씨는 2일 발간된 문예지 ‘한국문학’ 가을호에 작가와 교수 등 지식인들 간의 대화체로 전개되는 원고지 620장 분량의 소설 ‘디스토피아(dystopia·이상향의 반대)’를 발표했다. 이 소설은 민중문학의 대표적 시인이었던 고 김남주 시인의 시와 작가 조정래(동국대 석좌교수) 씨의 소설 ‘태백산맥’ 등이 젊은이들을 무분별하게 반미 감정과 좌파로 몰고 갔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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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씨는 2일 “7월 남북작가대회에 참석해 백두산에 올랐을 때 행사 중에 김 시인의 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가 낭송되는 것을 보고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2년간 써온 이 글을 급히 게재하게 됐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그는 “소설 내용 가운데 지나치게 미국 측에 기운 부분이 있다고 비판받지 않겠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워낙 반미 바람이 비상식적으로 불고 있어 미국에는 긍정적인 면이 분명히 있다는 걸 보여 주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여덟 살 손자가 ‘빈 라덴 따라 나도 테러리스트가 될 거야…원자폭탄 메고 63빌딩을 폭파할 거야’ 하고 노래 부르는 걸 보고 놀란 ‘민중문학계의 원로 시인’과 함께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나’ 하고 고민했다”고 말했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20&article_id=0000314336§ion_id=100&menu_id=100



홍상화 “남북작가대회때 反美 시낭송…일부 지식인 위험”

[동아일보 2005-09-03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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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남민전 관련자들입니다. 민주화투사가 아닙니다. ]







[ 임헌영 통일연대 공동대표 , 6.15 공동위 남측 공동대표 ]

1979 ~ 1983년 '남민전' 사건으로투옥.



임헌영

http://www.yimhy.pe.kr/



임헌영(任軒永)

출생 : 1941년 1월 15일 출생
직업 : 현 문학평론가
소속 : 현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임헌영
(任軒永, YimHunyoung).
본명 ; 임준열(任俊烈)



현재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 민족문제연구소소장.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책과 인생>>주간. KBS시청자위원회 위원장.
20여 저서, 2000여논문, 수필, 칼럼, 평론 발표.





내가 걸어온길...




경북 의성에서 1941년출생.

1953년 고향 이웃 마을 소재 조문 초등학교 졸업.
1956년 의성중학 졸업.
1959년 안동사범 졸업.
1959~ 1960년 초등학교 교사 2년지냄.

1961~ 1965년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입학, 졸업.
1962~ 1965년 중대신문사 기자.
1965~ 1968년 중앙대 대학원 현대문학 전공.
석사논문 <전후 한국시 연구 - 6. 25이후 시문학의 특이성고찰>.

1966년 <<현대문학>>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1965~ 1968년 <<藥業新聞>>.
1968~ 1970년 <<京鄕新聞>>등 기자.

1970~ 1972년 <<월간다리>> (1972년 10월유신으로 폐간) 주간.
1972~ 1974년 中央大 등 강사 지냄.
1974년 긴급조치 시기에 문학인사건으로 투옥.
1975~ 1978년 태극 출판사 기획위원으로<<한국문학대전집>> 기획.
1978 ~ 1979년 <<월간독서>>주간.


1979 ~ 1983년 '남민전' 사건으로투옥.

1986 ~ 1989년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1988년 한국문학 작가상 평론부문상 수상
1990 ~ 1992년 <<한길문학>>주간.
1992년 EBS(교육방송)<문학의 세계>진행으로 우수 프로그램상 수상.

1996 ~ 2002년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아카데미 원장.
1996년 편운문학상 평론부문상 수상.
1997 ~ 2003년 <<한국문학평론>>주간.

1998년 복권.
1998년 현재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
2001년 2003년 민족문제연구소 부소장
2003년 현재 한국문학평론가 협회 회장
2003년 현재 KBS 시청자위원회 위원장


2003년 10월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 1991. [ 민중당 이재오 후원회 --- 임헌영 --- 김남주 --- 인명진 --- 박원순 ]


[....지구당 창당 1주년이 되는 1991년 9월21일 후원회 발족기사가 각 신문에 실렸다. 후원회 회장은 신상웅 교수였고 회원으로는 계훈제(재야원로), 이효재(이화여대 교수), 한완상(서울대 교수), 구중서(수원대 교수), 유인호(중앙대 교수), 이각범(서울대 교수), 조준희(변호사), 박원순(변호사), 박성민(변호사), 안영도(변호사), 이문열(소설가), 이호철(소설가), 김남주(시인), 김정환(시인), 신경림(시인), 김성동(소설가), 임헌영(문학평론가), 김승희(시인), 김용태(화가), 김동완(목사), 인명진(목사), 등 1백40명이었다.


후원회원들의 정성어린 도움으로 나는 선거를 치를 수 있었으며 나는 그들의 도움을 일생 잊을 수 없다. ....]






http://www.leejo.net/board/print_article.html?code=board_brief&number=271


1차 문화예술분야 정책 간담회 회의록 - 문학계

작성자 : 의원실 작성일자 : 2004년 09월 07일 10시 32분 10초





제 1 차 문화예술분야 정책 간담회 (문학계)속기록


♣ 일시 : 2004년 9월 6일 월요일 오전 7시 30분
♣ 장소 : 의원회관 120호
♣ 주최 : 국회 문화예술연구회(회장 이재오)

♣ 참석자 :

임헌영(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신세훈(한국문인협회회장),
고정일(동서문화사 사장, 작가),
한분순(문인협회 시조분과 위원장)
백시종(문인협회 소설분과 위원장),
천영세(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문화관광위원회 위원),
정병국(한나라당 국회의원, 문화관광위원회 한나라당 간사),

이재오(한나라당 국회의원, 문화관광위원회 위원),

고흥길(한나라당 국회의원, 문화관광위원회 위원),
정종복(한나라당 국회의원, 문화관광위원회 위원),
최구식(한나라당 국회의원, 문화관광위원회 위원),
손봉숙(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문화관광위원회 위원, 비서 대신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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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연대 ]


[ 6.15 남북공동선언실현과 한반도평화를 위한 통일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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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연대, 『親美는 賣國, 反美는 최고의 愛國』



한상렬씨가 상임대표로 있는 통일연대는 2001년 3월15일 소위 「외세의 간섭과 지배를 배격하고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을 통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공안당국의 수사자료에 따르면, 통일연대는 汎南本의 활동상의 제약을 피하고 합법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

통일연대는 汎南本, 전국연합 등 NL 운동권의 대표적 단체로서 국가보안법 철폐, 駐韓美軍 철수, 평화협정 체결,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고 있다. 올해 신년결의대회에서는 『親美는 賣國, 反美는 최고의 愛國』이라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통일연대의 사무를 총괄해 온 閔庚宇(민경우) 사무처장은 金正日의 통일원칙인 조국통일 3大헌장 기념탑 모형을 제작해 北送하는 등 국가보안법상 간첩혐의로 작년에 구속돼 지난 5월24일 1심 재판에서 징역 4년, 자격정지 3년 刑을 선고받았다.

검찰 측 기소내용에 따르면 閔사무처장은 북한 공작원 박용으로부터 활동지시 및 활동자금을 받으며 국가기밀을 탐지·수집·전달하고, 국가보안법 철폐, 駐韓美軍 철수, 조국통일 3大헌장(1996년 11월24일 북한의 金正日이 판문점을 시찰하며 제시했다고 하는 북한의 통일원칙), 全민족 대단결 10大강령(조국통일 3大헌장 중 하나인 북한의 통일강령), 북한식 연방제 통일방안의 실천투쟁을 전개해 왔다.


그는 2001년 1월22일 통일연대 결성時에도 박용으로부터 『통일연대 결성이 윗동네(북한지도부) 관심사항이니 광범위하게 묶어질 수 있도록 사업하고 제때제때 상황을 통보하고 정확히 종합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후 통일연대결성 및 추진과정을 20여 차례에 걸쳐 보고해 왔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 과정에서 그는 2000년 9월9일부터 2002년 12월30일에 이르기까지 汎南本 기념사업비 명목으로 1000만원을 받는 등 박용으로부터 총 17회에 걸쳐 총 3300여만원의 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통일연대 측은 『6·15 시대 국가보안법은 민족반역법이며 간첩도 있을 수 없다. 오히려 閔庚宇는 이 시대 최고의 애국자』라는 등의 주장을 펴며 閔씨 석방운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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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9



[..통일연대 간부로 공직을 맡고 있는 이들은 효림(공동대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과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공동대표, KBS시청자위원회 위원장)씨 등을 들 수 있다.

통일연대는 최근 인터넷에 올라 있는 상임고문, 고문, 지도위원의 명단을 삭제했는데, 여기에는 강만길(상임고문, 광복60주년기념사업회 위원장), 한승헌(상임고문,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한완상(상임고문, 한국적십자총재), 이해학(고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부이사장), 성유보(지도위원,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 등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맥아더동상철거집회를 벌인 강희남 목사는 전국연합과 통일연대에서 각각 고문과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www.futurekorea.co.kr)..]



http://www.konas.net/article/article.asp?idx=6927



입력 | 2005-07-19

전국연합·통일연대 간부, 각종 위원회 등 公職진출 두드러져


written by. 김성욱





맥아더 동상철거 앞장선 강희남, 전국연합·통일연대서 고문


親北단체인 전국연합(대표 오종렬), 통일연대(대표 한상렬) 관계자들의 공직(公職)진출이 노무현 정권 들어 두드러지고 있다.

‘6.15공동선언 5돌, 광복 60년, 미군점령 60년을 맞아 2005년을 자주통일의 원년, 주한미군철수 원년으로 맞이하자’는 2005년 전국연합, 통일연대의 사업목표가 보여주듯 이들은 주한미군철수와 김정일 정권과의 공조를 통한 연방제통일을 공개적으로 주장해온 단체들이다.

이들 단체 관계자들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민주화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원회(민주화보상위원회), KBS시청자위원회, 방송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를 비롯해 민주노동당을 통해 국회에도 상당수 진출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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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3.15.의 통일연대 결성선언문입니다. ]




[...미국은 우리 민족의 통일 노력에 개입하고 간섭하며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물줄기를 다시금 긴장과 반목으로 돌려세우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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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우리는 외세와 민족분열주의세력의 방해를 물리치고 6·15남북공동선언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남측의 통일역량을 폭넓게 결집한 '6·15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의 창립을 온 민족 앞에 선언한다. ... ]




결성선언문



오늘 우리는 조국통일에 대한 온 겨레의 절절한 염원을 안고 <6·15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의 결성을 7천만 겨레 앞에 엄숙히 선언한다.

6.15남북공동선언으로 우리 민족은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역사를 끝장내고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조국통일을 이룰 수 있는 역사적 전기를 마련하였다. 6.15남북공동선언은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계승하여, 우리 민족의 힘과 지혜로 통일의 문을 열어갈 것을 만천하에 천명한 민족 공동의 통일대장전이다.

6.15남북공동선언은 민족자주 선언이며, 민족대단결 선언이며, 통일선언이다. 6.15남북공동선언에는 화해의 정신에 기초하여 교류와 협력의 길이 열려 있으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마침내 통일을 실현할 방안이 밝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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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광풍을 몰아오듯 우리 민족의 통일노력은 또 다시 외세의 엄중한 도전을 맞고 있다. 미국은 우리 민족의 통일 노력에 개입하고 간섭하며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물줄기를 다시금 긴장과 반목으로 돌려세우려 하고 있다.

이 틈을 타서 일본의 극우세력은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음모를 드러내고 있으며, 국내의 수구냉전세력들은 6.15남북공동선언을 부인하며 노골적인 사대매국 행각과 민족분열책동에 골몰하고 있다.

미국의 패권적인 내정간섭과 긴장조성책동을 이대로 허용한다면, 우리 민족의 숭고한 통일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한반도에는 또 다시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말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는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는 미국의 방해와 압력에 굴종하는 정부당국을 보면서 우리 민족이 반세기만에 맞이한 조국통일을 이룰 수 있는 절대절명의 기회를 실현하기 위해 7천만 겨레의 힘과 지혜를 시급히 모아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자각한다.



이에 우리는 외세와 민족분열주의세력의 방해를 물리치고 6·15남북공동선언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남측의 통일역량을 폭넓게 결집한 '6·15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의 창립을 온 민족 앞에 선언한다.

통일연대는 온 겨레의 힘과 지혜를 모아내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6·15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하고 그 실현에 찬동하는 사람이라면 계급과 계층, 사상과 정견의 차이, 과거행적을 불문하고 누구와도 손을 잡고 나갈 것임을 밝힌다.


또한 통일연대는 6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에 있을 민족통일촉진운동기간에 전민족의 대단결로 통일운동의 대 도약을 이뤄낼 것이다. 통일연대는 민족의 화해와 대단결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김정일 국방위원장 방남을 기필코 성사시켜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6·15 남북공동선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국민의 힘을 모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반도에서 외세의 지배와 군사적 긴장, 대립이 종식되고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는 결정적인 전진이 이뤄지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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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과 고통으로 점철된 반세기 분단 역사를 끝내고 새 세기를 인류의 평화에 공헌하며, 융성번영하는 통일조국의 시대로 열어가려는 우리 민족의 숭고한 열망은 그 어떤 힘으로도 꺾을 수 없다.

우리 모두 6.15공동선언을 반드시 실현하여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완수하기 위한 민족대행진에 한 사람 같이 떨쳐나서자.



2001년 3월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








* 1964.3.15. 통혁당 창당준비위원회 [...1964년 3월 15일 「통일혁명당」 창당 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


http://www.nklibrary.com/nkterm/read.aspx?num=1003


한국민족민주전선


한국내 지하당으로 날조하고 있는 대남 혁명투쟁의 전위조직으로 당 통일전선부 (대남사업 담당)소속기구. 북한은 1961년 9월 로동당 제4차대회를 통해 한국내 지하당 결성에 관한 결의를 피력하고 이어 1964년 3월 15일 「통일혁명당」 창당 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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