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 일은 내 천직, 내 포부는 해남 소금의 전 세계 유통"

  • 만호염전 김성경 씨를 만나다


  • 보름 넘게 우리를 괴롭혀 오던 열대야가 잠시 주춤한 날이었다. 그러나 계속 된 폭염은 그 기세를 꺾을 줄 몰랐다. 오히려 그 여세를 몰아 우리를 인내의 한계로 내몰고 있었다. 오후 4시, 만호염전은 햇볕을 먹고 사는 염전답게 한 여름 뙤약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염전 자재와 소금을 저장할 수 있는 창고를 빼면 허허벌판이었다. 다행히 염전 입구에는 인부들이 잠시 쉴 수 있게 행사용 텐트가 세워져 있었다. 텐트는 굴곡이 심한 땅에 세워서 그런지 누가 위에서 누르고 있는 듯 평균보다 낮고 넓적하게 펼쳐져 있었다. 가뜩이나 바람 한 점 없는 날, 낮은 텐트는 더위를 피하는데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 밑에 앉아있어 봐야 직사광선만 간신히 피할 수 있을 뿐 한낮의 열기와 더위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모두가 햇볕을 피해 그늘을 찾는 오후 4시 경, 김성경 씨는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써레를 밀고 소금 결정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가 움직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하얀 소금 알갱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 작은 소금 산을 이루었다. 이렇게 모인 소금은 순백의 백색 그대로였다. 염전에서 일하는 그가 폭염을 피할 수 있는 도구는 오직 모자 하나뿐이었다. 누가 열심히 하라고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닌데 김 씨는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지금 손을 놓아버리면 소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울라치면 결정이 좋은 소금은 포기해야 한다. 김 씨가 부지런히 움직인 만큼 좋은 소금이 생산되는 것이다.



    김 씨가 염전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마을에 사는 후배 고 씨가 오토바이에 아들을 태우고 염전을 찾아왔다. 그리고 승용차 한 대가 그의 뒤를 따랐다. 수원에서 사는 관광객 부부가 해남을 여행 온 차에 성경 씨의 소금을 사기위해 일부러 들린 것이었다. 지난해까지는 김 씨가 길가에 포장 점포를 차려 두고 소금을 판매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김 씨가 길거리 점포를 운영하지 않자, 관광객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김 씨 염전에 찾아 온 것이다.

    “작년에도 여기서 소금을 사 갔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도 소금을 사려고 왔습니다.”관광객은 지난 해 구입한 소금이 정말 맘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김 씨는 야적장에 있는 소금을 차에 실어주고는 자신의 차에 있는 명함을 꺼내 관광객에게 건넸다.
    “여기 전화번호 있으니 전화로 주문하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관광객은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염전을 떠났다.


    나는 타고난(?) 염전 일꾼“

    남들은 염전 일 한나절만 해도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더워서 그럴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 정도는 아니고, 힘들긴 해도 할 만합니다.”기자가 물었다.“체질적으로 타고 나서 그런 것 아닌가요?”“타고 난 사람이 어디 있나요. 저도 힘들지요. 그런데 남들이 체감하는 만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염전 일을 해서 길이 들었나 봅니다.”
    그의 부친은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지금의 염전을 인수했다. 그는 그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친의 염전 일을 거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시로 나가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23세 되던 해, 건강이 좋지 않은 부친의 부름을 받고 귀향해 현재까지 염전업과 농사일을 하고 있다.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때 제일 속상해

    그는 부친과 함께 3정반(7,000여 평)의 염전을 꾸려 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고만고만한 염전 10개가 모여 만호염전이란 법인도 설립했다. 김 씨는 이렇게 모여 있는 10개 염전 주인 모두가 정직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제가 아는 이분들은 모두 정직하게 소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소금과 관련된 나쁜 보도가 나올 때, 그리고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전화해서 걱정해 줄 때 정말 속상합니다. 극히 일부 염전이나 포대갈이 하는 업자로 인해 전체가 오해를 받는 것이니까요......, 우체국에서 상품을 판매하시는 분이 그러는데 다른 상품은 쉽게 판매가 가능한데 소금 한 포대를 팔기위해 10분 동안을 상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소금이 우리 생활에 필수품인 만큼 불신도 그만큼 크다는 얘기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직하게 소금을 생산한 만큼 소비자들도 자신을 좀 더 믿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큰 것 같았다. 그는 염전에서 함초를 수확해 일 년에 200만 원 정도의 과외수입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염전 이야기



    김 씨는 이어 염전 얘기를 들려주었다. 염전 일은 보통 2월 중순부터 시작한다. 소금을 생산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먼저 염전을 보수한다. 패이거나 깎인 둑을 정비하고 염전 주변을 말끔하게 청소한다. 그런 다음 3월 초부터 소금 생산을 시작해 그해 10월 말께 소금 생산을 종료한다. 해남의 바닷물 염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낮은 0도인데, 염도를 21~22도까지 끌어올려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다른 지역은 기본 염도가 11도나 되는 곳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소금이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4월 말부터 9월 초까지는 양질의 소금이 생산된다. 그러나 3월 초와 10월 말에 생산되는 소금은 너무 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판매를 하지 않고 염전을 찾아오는 상인들에게 공업용으로 판매하고 있다. 소금은 염전의 토질에 따라 맛이 다른데 토질이 좋은 곳은 맛 좋은 소금이 생산되고 토질이 나쁜 곳은 애초부터 좋은 소금 생산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가격만 가지고 소금 구매를 판단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농사 이야기

    김 씨는 염전 일과 병행해 2만여 평의 논에 벼농사를 짓고 있다. 누가 봐도 대농이다. 그런데 김 씨는 자신은 대농이 아니라고 말했다. 김 씨가 사는 황산면 신정마을에는 김 씨보다 농사를 더 많이 짓는 사람이 있어 자신은 상대적으로 대농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가 염전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농사를 많이 지을 수 있는 이유는 새벽 4시부터 밤늦게까지 논에 나가 일하시는 부지런한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운 좋게 염전 일과 농사가 겹치지 않기 때문이란다. 모내기 할 때는 염전 일과 잠시 겹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염전 일이 한가할 때 벼농사를 지을 수 있어, 염전 일과 논농사를 병행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단다. 그는 염전 일과 가을걷이가 끝나면 절임배추 판매를 준비한다. 틈틈이 그 해 판매할 수 있는 양만큼의 배추를 밭에 미리 심어놓고, 김장철이 돌아오면 자신이 생산한 배추와 소금을 이용해 절임배추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절임배추 판매가 끝나면 그는 공식적인(?) 휴가에 들어간다.


    해남소금 유통은 나의 포부

    그는 염업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 중 자신이 제일 어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좀 더 진취적인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해남소금의 전 세계 유통이다. 입소문으로는 해남소금의 우수성이 입증되고 있는데 비해 그 경제적 위상과 가치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소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그래서 그는 해남소금의 직거래 유통망을 갖추고 싶다고 했다. 현재 업자들에게 헐값에 판매되고 있는 해남소금의 직거래를 유도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고 했다. 그가 이런 신념을 갖게 된 데는 그가 소금 생산자로 소금의 특징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김 씨는 “소금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른 상품과는 달리 가격이 더 안정적이고, 변질되거나 상할 우려가 없으며,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더 값이 나가는 장점을 지닌 상품이기 때문에 유통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지역에 대한 봉사
    그는 지인의 소개로 아내를 만났다. 그리고 첫눈에 반해 결혼을 했다. 현재는 아내와의 사이에 초등학생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이 특별하게 좋은 순간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항상 아내와 아이들이 좋기 때문이란다. 가족을 설명하는 그의 표정에는 행복감이 넘쳐흘렀다. 가족만 생각해도 그저 행복한 사람 그런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정말 순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축복받은 삶을 세상 사람과 나누려 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지역의 봉사단체 몇 곳에 가입해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와 함께 ‘뿌리나눔’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황영선 씨는 “회비만 내고 봉사활동에 참석하지 않는 회원도 있는데 김성경 후배는 한 번도 봉사활동에 빠진 것을 본적이 없다”며 “그의 성실함과 진정성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 윤승현 news@jeo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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