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의 대한민국.(41)

  • 작성일 2009-08-17 16:43:13 | 수정일 2009-08-28 07:17:33
  • “무슨 사내자식이 그렇게 말이 많아? 먹을 건지 안 먹을 건지만 말하면 되는 거잖아!”

    목에 핏대가 섰다. 붉은 기운이 목을 타고 얼굴까지 올라왔다. 자신도 모르게 내지른 소리에 당황하며 휴대전화의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휴대폰을 조수석에 던지는 동시에 머리를 세차게 핸들에 박았다. 부끄러웠다. 마치 발가벗겨진 자신의 모습을 천이 훔쳐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점점 자신을 조여 오는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벨소리가 울렸다. 천의 지정 벨이었다. 심장이 술을 먹은 것처럼 심하게 요동쳤다.

    끓어지고 다시 울리기를 두 번. 더 이상 휴대전화는 울지 않았다. 심장도 다시 제 속도를 찾고 있었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문자 도착을 알리는 벨소리가 짧게 울렸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손은 이미 휴대폰을 열어 문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술 먹을 시간은 없지만 음료수 한잔 할 시간은 있네. 앞으로 갈게. 3분 걸린다.)

    문자를 천천히 읽어 내려간 뒤 의자를 살짝 뒤로 제쳤다. 지그시 눈을 감고 휴대전화를 쥐고 있는 손의 손등을 이마에 올려본다. 알 수 없는 생각들이 머리의 두통을 만들었다. 그래도 눈을 감고 있으니 몸의 근육들이 조금씩 나른해졌다. 머리가 생각을 만들어 내지 못하도록 최대한 멍하니 있으려 노력하였다. 그때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니 천이 캔 음료를 들고 살짝 흔들어 보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머리까지 차가움이 전해지자 두통이 조금 가시는 듯 했다.

    천이 음료수를 건네며 보닛에 몸을 기댔다.

    “뭐야? 갑자기 짜증이나 내고. 마셔.”

    “그냥. 오늘 진상 손님 오기로 해서 짜증나서 그랬어. 미안.”

    “참나! 야! 진상 처리 반 있잖아. 우리 아가씨들. 하하.”

    기분이 좋지 않은 아영의 기분을 풀어주려 천이 살짝 오버하며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했다.

    “요즘 콜 많이 들어오겠네? 겨울장사 들어갔으니.”

    “말도마라. 바쁘긴 한데 손님은 그대로야. 범휘아우가 정선으로 빠져나가니 내 발만 바빠졌어. 빨리 운전 할 놈 구해야 되는데 애들 거의 대부분 정선으로 빠져있어서 인원이 너무 부족하다.”

    천의 하소연은 아영의 귓전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복되는 알 수 없는 답답함과 혼란이 그의 밝은 모습에 그나마 조금 위로 받고 있을 뿐이었다.

    천은 대답도, 표정의 변화도 없는 그녀에게 힘이 잔뜩 들어간 소리를 내었다.

    “임마! 기운 좀 차려. 왜 그렇게 축 쳐져있어?”

    아영의 머리에 천의 큰 손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따뜻한 손의 감촉이 좋았다. 하지만 그 손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낡은 휴대폰이 그 손을 거두어 갔기 때문이다.

    “예! 사장님. 예. 바로 보내겠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급하게 음료수를 들이키고는 아영에게 빈 캔을 건넸다.

    “나 가봐야겠다. 기운 좀 차리고 힘 좀내. 이따 볼 수 있으면 보자.”

    서둘러 차로 돌아가려는 천의 발목을 아영이 붙잡았다.

    “연수 언니, 이젠 정말 이해하는거야?”

    세찬바람이 아영의 볼에 연지를 찍어 놓았다. 그 모습은 새침한 소녀와 같았다. 곁에 바짝 다가온 천이 그녀의 볼을 귀엽다는 듯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뭐, 그냥 용기를 낸 거야. 처음부터 용서고 뭐고 없었던 거 같아. 다시 누나와 가까워지면 세인이의 생각이 날까봐 두려웠던 거야. 정선 자리 잡히고 나면 누나 한번 보러 가려고. 이젠 서로 쌓여있는 것들을 풀어도 될 거 같아. 나간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천은 미련 없이 돌아서 다시 차로 향했다. 그런 그를 보며 아영은 소리 없는 눈물을 보였다. 무엇의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용기라. 후후. 그래 나도 있었지 용기. 아니, 빌어먹을 용기로 위장한 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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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오늘은 이게 마지막 카드입니다.”

    창석이 몇몇 사내들에게 카드를 쥐어줬다. 약속이나 한 듯 사내들이 카드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어둠이 깔린 정선은 아무것도 눈에 지 않았다. 추위에 몸이 떨려왔다. 히터를 살짝 틀어 놓고 조수석에 놓인 큼직한 돈 자루를 내려다보았다. 쓰레기를 담은 것처럼 담겨있는 돈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면서도 눈 밀러로 사내들의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긴장을 놓지 않고 사내들이 잠시라도 소곤거리는 느낌이 들면 뒤돌아서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소재원 sojj12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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