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의 대한민국.(4)

  • 작성일 2009-06-02 15:12:43 | 수정일 2009-06-22 17:23:36
  • “호호 내가 예전에 언니 아가씨였을 때가 좋았지. 나도 요즘 술값 카드로 나오는 게 많으니까. 솔직히 죽을 맛이야.”

    “아이고! 요즘 매상 최고로 잘 올리는 네가 그런 소리 하면 난 죽으라는 애기야?”

    “그래도 진짜 언니 새끼로 있었을 때가 좋았어. 실장 되고 나니까 낮에도 외교하느라 쉴 틈이 없다니까.”

    서로의 푸념이 이어지면서도 상반된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더욱 빛을 발했다.

    “언니 어제 천이 아가씨들 TC 나왔어? 오늘 빼줘야지.”

    “응. 잠시만.”

    천이 이야기가 나오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연수의 얼굴은 제 빛을 찾아갔다. 그리고 재빨리 가방에서 봉투를 찾아 아영에게 건넸다.

    “페이 받으러 오라고 해야겠다.”

    봉투를 받자마자 아영이 휴대전화기를 들었다. 연수가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게?”

    “응. 요 앞에서 손님 좀 만나려고.”

    “그래. 언니. 조심해서 갔다 와. 오늘 첫 방은 내 손님이다. 헤헤.”

    아영이의 말에 연수가 쓴 웃음을 보이며 서둘러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아영의 표정도 굳어졌다.

    ‘언제까지 이래야 되는 거지? 점점 서로의 골이 깊어져 가는 거 같다. 더 이상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대하며 웃는 것도 이젠 지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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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 서류 가져 왔습니다요.”

    “그래. 어이! 내일모레 40대. 이리 와서 여기 지장 찍어.”

    천의 손짓에 사내가 벌떡 일어나 소파로 다가왔다. 그러나 채권 양도서류를 보자 쉽사리 지장을 찍지 못하고 멀뚱멀뚱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뭐야! 빨리 찍어. 우리도 장사 들어갈 시간이니까.”

    다급하게 말하는 천과 달리, 사내는 안절부절 못하며 두 손만 매만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천의 충혈 된 눈이 사내를 노려보았다.

    분위기가 험악해 지는 것을 느낀 범휘가 사내의 손을 억지로 가져다 인주를 묻혔다.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나이도 많은 양반이 한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범휘를 올려다보며 한가득 원망을 표출했다.

    지장이 선명하게 찍힌 서류를 보며 천이가 흐뭇한 웃음을 보였다.

    “흐흐, 이봐 40대. 담배 한 대랑 바꿨다고 생각해. 범휘아우. 여기 있는 명함들 다 찾아서 태워버리고, 동생들 몇 명만 남겨 놓고 철수해. 여기 출근하는 아가씨들은 오늘 부로 우리 사무실에서 일시키면 되고. 저 새끼들이 쓰던 대포폰 압수해서 저 새끼들이랑 거래한 가게들 손 좀 봐주고.”

    “예 형님.”

    천은 원룸을 빠져나와 복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막 계단을 내려가려는 찰나, 오늘의 시작을 알리는 투박한 벨소리가 복도가득 울려 퍼졌다. 그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두 대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하나는 엄청 오래된 구형 휴대전화였고, 하나는 개통한지 얼마 돼 보이지 않는 최신기종의 휴대전화였다. 그중 구형 전화의 발신자를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정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하하 법인 대포요? 몇 대나요? 20대? 이야. 일단 자금이 되는지 모르겠는데 렌터카 대포죠? 휴~ 그럼. 일단 어디보자. 신차가 몇 프로로 맞춰 주실 건가요? 에이 50%면 너무 무겁죠. 45%합시다. 일단 매물 쌓아놓고 팔아야 되는데. 헤헤 고맙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천이 다시 원룸 현관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돌려 범휘를 찾았다.

    “범휘아우 잠깐 이리와 봐.”

    다가온 범휘의 양손에는 명함이 한가득 들려있었다.

    “여기는 동생들에게 맡기고 아우는 지금 바로 미금역으로 가서 장 사장 좀 만나봐. 이번에 법인 작업해서 대포차 좀 많이 나왔나보다.”

    “지금 바로 말입니까요?”

    “그래. 형이 일단 아가씨들 돌리고 있을 테니까, 가서 서류 확인하고 괜찮으면 바로 계약해.”

    “예. 형님. 쉬십시오.”

    천이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다시 주머니에서 요란한 벨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최신기종의 휴대전화였다.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고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어이! 아영양.”

    “짜식. 뭐해?”

    “슬슬 장사 들어갈 준비하고 있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며 통화를 이어갔다.

    “그래? 이따가 가게로 들려 어제 너희 아가씨들 페이 나왔어. 그런데 너 너무한다. 매일 같이 이렇게 너희 보도 불러주는데 밥이라도 한 끼 사야 되는 거 아니야?”

    “하하 뭐야? 이젠 나한테까지 외교하는 건가?”

    “뭐? 장난? 웃기지 말고 전화해. 나 손님한테 전화 들어온다. 이따 통화하자.”

    뭐에 쫒기는 듯 아영이 서둘러 전화를 끓었다. 천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울리네. 이 핸드폰. 언제 또 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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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 서 실장이에요. 바쁘세요?”

    북적거리는 분당 서현역 거리. 연수는 바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화할 상대를 찾기 위해 열심히 수첩을 뒤적거렸다. 얼마 뒤 연결된 전화기 건너편선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의 음성이 전해져왔다.

    소재원 sojj12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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