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최영진 강좌
  • 孔子님의 政治理念 1

  • 작성일 2016-01-15 19:11:46 | 수정일 2016-01-26 23:34:50
  • 顔  淵  季  路  侍     子  曰   盍  各   言   爾 志也.

    안  연  계  로  시    자  왈    합  각  언  이  지  야.

    한자풀이. 顔얼굴 안 淵 못연 季철계 끝계 路길로 侍모실 시 盍어찌아니 합(何不也) 어찌하지 않는가의 뜻이다. 爾너이 志뜻지  

    해석. 안연과 계로가 공자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어찌 각기 너의 뜻을 말하지 않는가? 하셨다.  

    해설. 顔淵(안연)은 공자의 首弟子이니, 姓은 顔이요, 字는 子淵이다.

    顔路의 아들로 공자님의 연세 38세에 태어나 弱冠의 나이로 공자님을 모시고 천하를 周流하고 돌아온 다음해 공자님의 연세 69세에 32세로 세상을 떠났다.

    안연의 道는 거의 聖人의 경지에 버금가는 위치에 도달하여 공자님이 칭찬 하시기를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닫는다고 하셨다.” 그가 죽음에 공자님께서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다고” 안연의 관을 붙들고 심히 애통하시며 삼일을 굶으시고 애도하셨다고 한다.  

    子 路 曰 願 馬 車  衣  輕 裘   與 朋 友 共하여   敝 之 而 無 憾이로소이다.

    자 로 왈 원 마 차  의 경 구를 여 붕 우 공하여  폐 지 이 무 감 이로소이다.  

    한자풀이. 衣옷입을 의 輕가벼울 경 裘갖옷 구 敝해질 폐 憾서운할 감  

    해석. 자로가 말하였다. 수레와 말과 가벼운 갖옷을 벗과 함께 쓰다가 해지더라도 서운함이 없고자 합니다.  

    해설. 자로는 공자님의 제자이니 위나라 사람이다. 이름은 由이며 공자님이 처음 施敎(시교) 할 때부터 측근에서 공자님을 보필한 충직한 제자이다. 그의 勇猛은 당세에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성격이 과격하고 급하여 공자님에게 자주 야단을 맞기도 했으며, 자기의 의견을 솔직하게 공자님께 말하여 가장 많이 공자님과 問答(문답)한 제자이다.

    衣는동사로 옷을 입는 것이요, 裘(구)는 가죽으로 만든 갖옷이이요, 憾(감)은 서운하게 생각하는 것이요, 敝(폐)는 달아져 해진 것이다.   

    顔  淵  曰   願 無  伐  善    無   施  勞합니다.

    안  연  왈   원  무  벌  선   무  시  로합니다.  

    한자풀이. 伐자랑할 벌 善잘할 선 착할선 施과시할 시 베풀시 勞공로 힘쓸 노  

    해석. 안연이 말했다. 내가 잘하는 것을 자랑하지 않으며, 공노를 과시함이 없고자 합니다.  

    해설. 伐(벌)은 자랑 함이요, 善은 내가 잘하는 것이요, 施(시)는 과시하고 뻐기는 것이요, 勞(노)는 공로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周易(주역)에 공노가 있어도 자랑하지 않는 다는 것이 이것이다. 혹자는 勞는 수고로운 일이니, 수고로운 일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므로, 남에게도 베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역시 이 말도 통하는 말이다.  

    子  路  曰   願  聞  子   之 志,      子 曰  老  者 安  之    朋  友  信  之    少  子  懷 之라.

    자  로  왈   원  문  자  지  지,     자  왈  노  자  안  지    붕  우  신  지   소  자  회 지라.

     

    해석. 자로가 말하기를 선생님의 뜻을 듣고자 합니다.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노인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벗에게는 믿음을 주고, 젊은이를 감싸고자 한다.

     

    해설. 노인을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서는 우선 衣食住 生活이 풍족해야 할 것이며 벗에게 믿음을 주기위해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을 사랑해야하며 젊은이를 감싸고자 하면 먼저 그들을 사랑으로 교육시켜 꿈을 안겨 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공자님이 평소에 이루고자하는 福祉國家(복지국가)의 건설이셨다.

    공자님께서 34세에 처음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위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위나라 수도에 도착하시여 사람이 많음을 보시고 백성이 많기도 하다고 말씀하시니, 제자 염유가 그 말을 듣고 선생님 백성이 많으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하고 물으니,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백성들의 衣食住 生活을 풍족하게 하여야 한다.” 염유가 또 묻기를 백성들이 이미 풍족하게 되면 그 다음은 무었을 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백성들에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富를 구할 수만 있다면 말채찍을 잡는 마부가 되더라도 그 일을 하겠다고 하시며 그러나 의롭지 못한 富貴는 나에게는 뜬 구름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공자님은 少時에 가난하여 晝耕夜讀으로 학문을 익히셨기 때문에 천한 일도 마다 하지 않으시고 가족이 생계를 위하여 창고 관리자의 일도 하셨고 사육관리사가 되시어 짐승을 번식시키는 일도 하시었다.

    그러나 윗글을 말씀하실 때는 제후의 반열에 계시였으므로 공자님의 뜻을 헤아린다면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남녀는 평등하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신 것이다.  

    자로의 처형인 안택주가에 머무시다가 일 년이 되도록 위나라 영공이 만나주지 않자 다음해 35세에 노나라에 돌아오니, 노나라 군주 소공이 强臣인 계시를 치고자 晉(진)나라 군대를 빌려 공격 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제나라로 망명하니 노나라가 혼란하여 정사가 계씨가의 손에 넘어가 독단 하므로 노나라에 道가 통하지 않을 것을 아시고 부모의 나라를 떠나 제자들과 함께 제나라로 가시어 제나라 대부 高昭子(고소자)의 家臣이 되시어 제자들을 가르치며 정사에 관여하게 되시었다. 그때에 따르는 제자가 25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齊나라 군주 제경공이 하루는 공자님을 부르시어 정사를 물으시니, 공자님이 대답하시기를 “자식은 자식노릇 하고 부모는 부모노릇 하고 신하는 신하노릇하고 임금은 임금노릇 잘 하는 것입니다.” 하니, 제경공이 하는 말이 “참으로 진실하다. 자식이 자식노릇 못하고 부모가 부모노릇 못하고 신하가 신하노릇 못하고 임금이 임금노릇 못하면 곡식이 있다 한들 어찌 먹을 수 있겠는가?”

    하시었다. 공자님이 물러간 얼마 후에 제경공이 공자님께 尼谿(니계)의 땅을 주어 대부로 삼고 정사를 하려고 하자 대신인 晏嬰(안영)이 극구 반대하므로 제경공이 하는 말이, “내가 공자를 계씨와 맹씨의 중간으로 등용하여 쓰고자 하나 나는 이미 늙었도다.” 하시며 공자를 등용하여 쓰지 못하였다.   

    공자님이 떠날 때가 된 줄 아시고 제나라를 떠나 노나라로 돌아오시니, 실로 노나라를 떠난 지 8년이요, 공자님의 나이 43세시고 노나라 정공 1 년 이었다.

    그때 당시 계씨의 가신 陽虎(양호)가 난을 일으키고 계씨를 가두고 정사를 독단 하였으므로 공자님은 詩書禮樂(시서예악)을 가르치시니 제자들이 더욱 많이 모여 들었다.

    양호가 공자님과 더불어 정사를 하고자 수차례 불렸으나 양호의 무도함을 알기에 나아가지 않으시고 제자들의 교육에 전염하시었다.   

    定公 9년은 공자나이 51세라 公山不紐(공산불뉴)가 費邑으로 계씨를 배반하고 공자를 부르니 공자님께서 가려고 하셨으나 긑내 가시지 않으셨다. 그때에 공자님이 가시려 하자 자로가 말하기를 갈 곳이 없으면 그만이지 하필 공산씨에게 가려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자, 나를 써준 사람이 있다면 어찌 할 일이 없겠는가? 만약 나를 써준 사람이 있다면 나는 동쪽에 周나라를 만들 것이다.” 하셨다. 그해에 정공이 공자를 불러 공자로 하여금 中都의 邑宰(읍재)로 삼으니,1년 만에 사방에서 공자님의 정사를 본받으려고 왔다.  

    다음에 계속됨니다.

    청송 haenam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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