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몰락: 뭘 배우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 월가의 몰락: 뭘 배우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월가의 몰락: 뭘 배우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 월가 몰락의 진행과정

    월가가 몰락하고 있다.

    우린 얼마 전까지 미국 월가 투자은행들이 망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반년 사이에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리먼브라더스가 사라졌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도 위험하다. 세계최대 보험사 AIG도 구제금융으로 연명하고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말처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미국의 월가가 무너지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 때문이다. 작년 3월 HSBC가 금융기관 최초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발표했을 때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4월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인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파산하면서부터 서프프라임 사태가 본격화됐다. 가장 먼저 모기지 업체가 무너졌다. 뉴센추리 파인낸셜에 이어서,  금년 1월에는 컨추리와이드가 무너져 BOA가 인수했다.

    이어서 투자은행의 몰락이 시작됐다. 금년 3월 미국 5번째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무너졌다. JP모건이 인수했다. FRB는 JP모건에 290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사실상 공적자금 투입이 시작됐다. 

    잠시 소강상태로 있다가 6~7월부터 급격히 악화됐다. 7월 연방예금공사(FDIC)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 인디맥 방코프를 인수했다. 이제는 공적기관이 직접 나서야 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9월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9월 6일 양대 모기지 기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2천억 달러 지원계획이 발표됐다. 15일에는 메릴린치와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졌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메릴린치는 BOA가 50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됐다. 전 세계 주가가 폭락했다. 한국도 코스피가 6% 넘게 폭락했고 원달러 환율도 4% 넘게 폭등했다.

    그 후 21일 현재까지 미 정부와 FRB는 ▲AIG에 850억 달러 지원 ▲정리신탁공사 설립으로 부실채권처리(최소 5천억 달러 이상 투입 전망) ▲MMF 안정자금 500억 달러 긴급투입 등의 조치를 단행했다. 또 세계 6개 중앙은행들이 1800억 달러의 유동성 공급을 발표했다. 덕분에 18~19일 미국 주가는 폭등했다. 그러나 파산과 폭락의 공포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9월 15일의 주가 폭락 사태와 미정부의 RTC 설립을 통한 부실채권 정리 방침을 고비로 금융부문의 위기는 일단 새로운 국면을 맞는 듯 하다. 그 동안은 미 정부가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시장원리과 구제금융’ 사이에서 원칙 없는 결정을 해서 불안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RTC 방침이 결정됨으로써 ‘정부의 구제금융’ 쪽으로 큰 틀이 잡혔기 때문에 서서히 안정을 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브프라임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카드, 소비자금융, 일반상업은행의 부실 로 전이될 위험은 여전히 크다. 그리고 실물무문이 악화가 불가피한데, 이것이 다시 금융부문의 부실을 키우는 실물과 금융의 악순환 구조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미국경제가 앞으로 일본형 장기불황에 빠질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실규모는 얼마나 되고 공적자금은 얼마나 들어갈 것인가?

    위기를 예언하고 경고한 사람도 많았다.

    80년대 후반의 아시아 금융위기를 예언했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06년부터 미 금융시스템 붕괴를 예언했다. 루비니는 금융시스템 붕괴가 12단계 과정을 거치는데 지금은 마지막 11~12단계가 진행 중이라고 본다.

    헤지펀드 권위자 조지 소로스는 작년부터 “미국이 전후 60년 가운데 최악의 진통을 겪을 것”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의장도  “100년에 한번 있을 수 있는 사건”이라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했지만, 시기적으로는 너무 늦었다. 

    미국 부동산 가격은 현재 06년 최고치에 비해서 약 20% 하락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부동산 거품 붕괴로 약 5조 달러가 사라졌다고 추정한다. 또 앞으로 10% 더 하락할 것으로 본다.

    연초만 해도 금융기관 부실채권은 3천억 달러 전후로 추정됐다. 그러나 9월 현재 5천억 달러 이상으로 늘었다. 앞으로 얼마가 늘지 모른다. 파생상품 때문에 숨겨진 부실이 얼마인지 모르고, 주택가격이 더 하락하면 부실채권 규모도 더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 정부가 지금까지 약속한 공적자금만 해도 1조 달러가 넘는다. 베이스턴스 300억 달러, 패니메이아 프레디맥 2천억 달러, AIG 850억 달러, MMF 500억 달러 등 3천650억 달러가 결정됐다. 합하면 3천650억 달러다. 앞으로 정리신탁공사를 설립하면 최소 5천억~8천억 달러가 필요할 것이란 전망이다. 따라서 총 1조 달러~2조 달러의 공적자금이 필요하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이미 투입된 자금 말고도 추가로 1조~2조 달러가 투입돼야 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공적자금 가운데 얼마가 회수될지는 알 수가 없다. 공적자금 처리에는 5년 이상이 걸린다. 최종적으로 5천억 달러 이상이 손실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 손실은 미국 국민의 혈세로 충당돼야 한다. 

    미국의 연간 GDP가 약 14조 달러다. 공적자금이 2조 달러면 GDP의 15% 규모라서 자금조달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9조6천억 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다.  한해 4억 달러의 재정적자를 내고 있다. 공적자금은 상당한 부담이다. S&P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적자금만큼 재정지출 여력이 떨어지고 소비위축도 불가피하다. 이번 사태의 영향이 실물경제에도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2. 월가의 몰락 원인과 전망

    서브프라임 사태는 왜 발생했고 월가는 왜 몰락했는가?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투기 사건부터 1930년대의 대공황, 현재의 서브프라임 사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대형 금융위기는 시대별 국가별로 형태가 다양하지만 본질은 똑같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 정부정책의 실패, 법제도의 미비’라는 3박자가 어울려서 빚어내는, 거품의 형성과 붕괴 과정이다.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의 정책실패는 금리다. 그린스펀의 책임이 크다.

    2000년 초반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부동산 시장 거품 형성의 가장 큰 원인은 저금리였다. 2000년 밀레니엄 IT 주식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할 때 미국 금리(FRB 연방기금금리) 5.25%였다.  이후 주식가격이 하락하고, 또 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FRB는 03년 6월까지 2년여에 걸쳐 13차례나 금리를 인하해서 1%라는 사상최저 금리를 만들었다. 이 기간에 주택 가격이 폭등을 시작했다. 그 후 04년 6월부터 06년 6월까지 2년 사이에 16번을 인상해서 5.25%까지 높아졌다.  그리고 07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하자 07년 9월부터 현재까지 7차례 금리를 인하해서 현재 2.0%다.

    00년~06년 사이에 미국 주택가격(중위가격)은 전국적으로 90%나 올랐다. (일본은 85년부터 91년까지 51% 상승). 이 기간 동안 주택담보대출은 10조 달러가 넘었다. 모기지 업체들은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돈을 빌려줬다. 서브프라임이다. 사람들은 저금리 유혹에 빠져서, 집값이 오르면 돈을 번다는 욕심에서,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다.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원리금 상환이 어려워졌다. 압류된 주택은 매물로 나왔다. 신규주택 판매는 감소하고 기존주택 가격은 폭락했다. 이렇게 06년부터 주택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20% 가까이 떨어졌다. 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고, 이어서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이 타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기관이 무너지고 이어서 관련 채권을 많이 보유한 금융기관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일본의 거품 형성과 붕괴 과정과 똑같다. 80년대 후반 엔고불황을 우려(95년 플라지 합의로 엔달러 환율이 폭락, 즉 엔화가치가 대폭 절상되자 불황이 올 것으로 예상한 일본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펴는 바람에 부동산 및 주식의 자산 거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뒤늦게 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하니까 빚을 낸 사람들이 집이나 주식을 매물로 내놓으니까 가격이 폭락하고, 이를 담보한 채권들이 부실화되면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쌓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일본의 경우는 자산가격이 하락하니까 실물경제가 타격을 입어서 소비지출이 감소하고 실업이 늘고 투자가 감소하는 장기불황에 빠졌다.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돈을 풀어도 유동성함정에 빠져서 경기는 살아나지 못했다.

     인간의 탐욕은 이렇다.  빚내서 집을 사는 사람도, 고수익 꿈에 부풀어 위험을 무시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금융상품을 사는 쪽도 문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파는 쪽이다. 미국의 투자은행들 사람들은 고객에게 손실이 나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다. 치외법권 지대에 산다. 투자은행의 파생상품은 무법천지나 다를 바 없다. 금융권 보수는 월등히 높다. 07년 미국의 최고 연봉자 10명 가운데 4명이 투자은행 CEO다.

    미국기업, 특히 월가 투자은행들은 단기 실적주의와 지나친 성과 위주의 보상시스템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자료에 따르면, 메릴린치의 존 테인(John A. Thain) 회장의 작년(07년) 보수총액은 7,851만 달러다. 그런데 정규급여는 5만8천 달러에 불과하고, 성과보수가 1천5백만 달러, 스톡옵션이 6천347만 달러에 달한다. 리먼브라더스의 리챠드 펄드(Richard S, Fuld Jr.)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정규급여는 75만 달러에 불과한데 인센티브(성과) 보수가 3,933만 달러나 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펄드 회장은 회사를 그만두면서 1억 달러가 넘는(118백만 달러) 보수를 챙겨갈 것이라고 한다. 이러니까 이들은 어떻게든 단기성과에 집작할 수밖에 없다.  리스크를 따지지 않는 독선적인 경영 스타일에 빠진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리먼브러더스의 리처드 펄드 CEO는 군대식 경영으로 자신의 경영방식에 대한 비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고한다. 메릴린치의 스탠리 오닐 회장도 부채담보부증권(CDO) 사업의 위험이 과도하다고 문제를 제기한 임원들을 해고해 버렸다고 한다.

    IB의 펀드매니저들도 마찬가지다. 위험한 투자를 해서 대박을 터뜨리면 엄청난 보너스를 받지만 큰 손실을 내더라도 최악의 경우 직장을 관두면 그만이다. 투자자만 쪽박을 찬다.  이 때문에 ‘지르고 보자’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IB에서는 대부분의 성과 보상이 1년 단위로 끊어져 있고 실적이 뛰어난 사람 위주로 계속 인력 스카우트를 한다. 시장에만 맡겨두면 고위험-고수익 경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미국 금융시스템이 ‘선진 금융’이라는 이름으로 각국에 수출됐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16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1929년 공황과 비교되는 이번 위기는 금융기관의 부정직성과 정책결정자의 무능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의 우수한 인재들(IB 직원들)이 경제의 효율성과 금융부문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기준과 규제를 회피하는 데 재능을 바쳤다. 그들은 너무너무 성공적이었고, 주택소유자 근로자 투자자 납세자인 우리 모두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로버트 새뮤얼슨은 "월가는 지금 공포와 탐욕의 무게에 눌려 붕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워렌 비핏은 파생상품을 “대량살상무기”로 비유했다. 심지어 파생상품이 범람하는 미국에는 투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까지 했다. 

    프랭크 파트노이 샌디에고 대학교수는 [전염성 탐욕: 기만과 위험의 금융활극과 시장의 부패]라는 책을 통해서 월가의 비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외환위기가 한창인 1999년에 [대파국: (F.A.S,C.O.: Blood in the Water on Wall Street Trader)]이란 책을 통해서 미국 월가 IB 맨들의 숨겨진 실상을 알려준 사람이다. 그가 04년에 쓴 [전염성 탐욕]이란 책의 소개문을 옮겨보면 이렇다. 

    “오늘날 전 세계의 금융회사와 기업들은 투자와 자산운용에서 선물, 옵션, 구조화 금융 등 각종 파생상품을 적극 활용하고 있고, 일반 투자자들도 주식투자를 하거나 금융거래를 하면서 알게 모르게 파생상품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하지만 이런 파생상품이 초래하는 거대한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할 법과 제도적 장치는 미비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자기방어 수단도 갖추지 못한 채 그러한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우리 모두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이 리스크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것은 대체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살로먼 브라더스의 트레이더로 사회에 발을 내디딘 첫 해부터 통화옵션 거래로 경이적인 수익을 올리며 월스트리트에서 주목받던 앤디 크리거. 그러나 영리한 다른 트레이더들이 금세 그의 거래수법을 알아챘고, 그에 따라 크리거의 거래기법은 점점 더 리스키하고 복잡해진다. 이익을 늘리는 데 급급한 회사 경영진이 방임하는 가운데 크리거는 엄청난 리스크를 부담한 거액의 베팅으로 다시 한번 거대한 수익을 올리지만, 회사가 애초 약속한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자 실망하여 회사를 떠난다.

    크리거가 떠난 후 살로먼 브라더스는 그의 투자 포지션 가치를 정산해본 결과 보고된 금액보다 8000만 달러가 모자라는 것을 알고 혼란에 휩싸인다. 당황한 경영진은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인 회계장부 조작을 통해 증발한 8000만 달러를 메우고자 했다. 이 때는 1988년이었고, 바로 이때부터 금융시장에서 ‘탐욕’이라는 바이러스가 다시 발생해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탐욕의 바이러스는 삽시간에 시장 구석구석으로 전염된다. 그로부터 15년에 걸쳐 기업의 자체 통제기능은 상실되고, 시장은 엄청난 모험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탐욕의 경연장이 됐다. 금융회사 직원들은 보다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 자신의 실적을 조작했고, 경영진들은 스톡옵션에 눈이 멀어 회사 전체의 이익을 조작했다. 이런 조작 행위는 규제의 허점을 파고들며 진화를 거듭했다. 이에 따라 법규를 회피하는 거래가 확산됐고, 투자은행은 물론 피앤지나 제너럴 일렉트릭과 같은 전통 기업, 오렌지 카운티와 같은 지방정부까지 파생상품 거래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파생상품을 이용해 속이는 자도 속는 자도 복잡한 파생상품 거래가 갖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리스크에 대한 통제와 관리가 제대로 안되는 가운데 들불처럼 퍼져나간 탐욕의 금융거래들은 결국 세계 곳곳을 파탄시키기에 이른다. 엔론, 글로벌 크로싱, 월드컴, 롱텀 캐피털이 파산하고, 미국은 물론 유럽, 러시아, 일본의 금융회사들이 막대한 손실에 신음하게 됐으며, 중남미와 동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은 금융위기를 맞았다. 전 세계의 주주와 납세자들을 희생시킨 각종의 구제금융이 급한 불은 껐지만, 탐욕의 바이러스는 여전히 법규의 허점을 노리며 활동을 재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저자는 탐욕의 바이러스가 금융시장을 다시 집어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6가지 제안을 내놓는다.

    ① 파생상품을 다른 금융상품들과 동일하게 취급할 것

    ② 세세한 법률조항을 만들기보다 ‘정직의 문화’를 조장할 수 있는 폭넓은 ‘기준’을 마련할 것

    ③ 신용평가회사들의 과도한 권한과 그들의 과점체제를 무너뜨릴 것

    ④ 금융부정은 반드시 처벌할 것

    ⑤ 현명한 투자자들이 금융자산의 가치 하락에 베팅할 수 있도록 공매도를 장려할 것

    ⑥ 투자자들 스스로 자신의 투자가 안고 있는 리스크를 스스로 통제하고 감시할 것 등이다.

    금융시스템은 신뢰 위에서 작동된다. 신뢰가 유지되려면 사기, 부정, 도덕적 해이를 막고 처벌할 수 있는 법제도가 밑바탕에서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파생상품을 따라가지 못했다. 상품의 내역, 거래 실태 등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했다.

    3. 월가 몰락이 주는 교훈

    노벨상 수상자이고 세계은행 부총재를 역임한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교수가 19일자 CNN 기고문을 통해서 금융시스템 안정과 위기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6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 임원들에 대한 인센티브 제어

    ○ 금융상품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심의위원회 설치

    ○ 금융시스템을 감독하고 과도한 차입을 방지하는 금융시스템 안정위원회 설치

    ○ 금융시스템의 안전성과 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차입을 제한하는 규제 도입

    ○ 소비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 신설

    ○ '대마불사(大馬不死)'식이 아닌 경쟁을 촉진하는 법률 등 6가지 해법이 그것이다. 

    우리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말이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최근 '국가의 귀환'이라는 기사에서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 키워드인 민영화ㆍ자유화ㆍ탈규제가 사라질 위기라고 전했다. 1930년대 월가 몰락 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은행산업 개혁과 감독 강화 등의 정책이 다시 강화될 거라고 지적한다. 국제전략투자연구소 톰 갤러거는 "전체적인 방향이 규제강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규제강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며 이제 관심은 그 강도와 범위"라고 지적한다.

    금융분야의 석학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최근 가디언지에 기고한 “금융 우월주의의 종말”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을 포함한 상당수 국가에서 헤지펀드와 투자은행을 비롯한 전반적인 금융시스템에 대해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카르멘 레인하트 교수와 필자가 공동으로 연구한 조사에 따르면 국제 금융위기 역사에서 막대한 금융규제 시대가 규제가 덜한 시대보다 금융위기가 적었다.

    1950년대 금융 억압시대로 돌아가자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최근의 위기 상황을 돌이켜볼 때 글로벌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가 업데이트돼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금융혁신은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규제와 균형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납세자들이 은행을 구제하는 틀에 영원히 갇힐 수밖에 없다. 부자인 주주들은 호황기 때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이고 말이다. 이제는 금융 우월주의에 약간의 겸손과 상식을 가미할 때다. “

    각국의 정치인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뿐만 아니라 매캐인도 금융규제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최근 "금융 시스템의 대청소(clean-up)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현재의 금융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4. 우리가 준비해야 할 7가지 과제

    월가 몰락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은 안이하고 미흡

    - 미국의 금융위기가 예고되었을 뿐 아니라 이미 금융기관의 도산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KIC를 통해 메릴린치에 투자를 했고 산업은행은 리먼이 파산신청을 하기 일주일 전까지 인수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 정부와 금융기관의 국제감각이 어느 수준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미국의 금융위기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가 수출을 늘이기 위해 환율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 올렸다가 물가문제가 불거지자 다시 환율정책을 바꾼 것은 우리 정부가 국제경제에 대한 감각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하게 해 준다. 미국 금융시장에서 유동성이 경색되어감에 따라 우리 자본시장에서 외화유출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환율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정부는 얼마전 미국에 외평채발행에 나섰다가 금리차로 포기한 적이 있다. 우리가 요구한 것은 180bp인데 미국시장이 요구는 230bp수준이었다고 한다. 외화차입이 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포기한 것은 미국금융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판단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종합하여 볼 때 우리 정부의 금융정책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의 국제금융에 대한 통찰력이 크게 미흡하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7가지 과제에 착수해야 한다.

     첫째, 미국식 금융선진화 모델을 재검토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오로지 영미식 금융 시스템을 모델로 삼아 추종해 왔다. 기존의 일본이나 독일식 상업은행 중심 체제에서 영미식 투자은행 중심 체제로 전환하고자 했다. 내년 3월부터 시행되는 자본통합법, 또 산업은행 민영화, 그리고 금융허브 구상도, 모두가 미국식 금융시스템과 월가 투자은행 방식을 염두에 둔 것들이었다. 

    그러나 미국식 투자은행이 줄줄이 몰락하고 있다. 미국식 금융시스템 전체가 위기에 처했다. 시장만능주의를 부르짖던 월가에서 금융사회주의를 외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이 시점에서 금융선진화 방안에 대해서 반드시 재검토해야 한다.  

    “금융에는 왕도가 없다”고 한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접금융과 직접금융, 규제와 자율, 분리와 겸업...이들 가운에 어느 쪽이 더 좋은지 획일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가장 적정한 조합이 뭐고, 우리한테 가장 잘 맞는 것이 뭔지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산업은행 민영화 방식에 대해서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통법은 미국식 투자은행을 모델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독립적 투자은행(Stand Alone IB)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특히 위험이 높은 파생상품 등에 대한 규제강화를 검토해야 한다. 또 금융허브 계획은 계획을 재검토하고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둘째, 탐욕을 억제하고 공공선을 중시하는 사회적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금융기관의 인센티브제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우리도 97년 외환위기 이후로 미국식 경영을 모델로 해서 경영진에 대한 보수체계가 바뀌었다. 특히 금융권은 지나치게 높은 인센티브 보수 체계가 도입됐다. 그래서 최근 해외투자 펀드나 KIKO 사례에서 보듯이 '일단 팔고 보자‘, “일단 수익을 올리고 보자’는 근시안적이고 부도덕한 행동을 유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로버트 실러 교수의 지적처럼, 무절제한 동물적 탐욕이 아니라 절제 있는 인간적 도덕만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건강하게 지키고 발전시킨다는 진리가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됐다고 본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개인의 자유와 공공선의 추구가 조화를 이루는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무절제한 탐욕을 제약하는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업의 문화, 보수체계 등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스탁옵션과 단기 성과위주의 인센티브는 개선되어야 한다.

     국책은행을 비롯한 공기업은 국회를 중심으로 보수체계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은 민간인 공개경쟁보다 공무원 낙하산인 경우가 많다. 공기업이라면 그 임직원들이 지나치게 높은 보수를 받거나 지나치게 인센티브 중심의 보수체계로 짜여질 이유가 없다.    

    셋째, 금융규제 완화 계획을 수정 보완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 금산분리 해체, 출총제 완화 등의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 내년 2월부터는 자총법이 시행된다. 해지펀드가 허용되고 금융상품에 대한 네거티브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다양한 파생상품이 자유롭게 판매될 예정이다. 

    정부여당은 금융규제완화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 또 자통법이 시행되는 내년 2월까지는 파생상품 등 위험이 큰 상품에 대한 상품심사, 공시 등을 강화하는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금융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금융상품에 대한 위험을 제대로 평가해야 감독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다. 파생상품의 경우 만든 사람이외에는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UBS 의 경우 CEO조차도 그 위험을 알 수 없었다고 할 정도다. 감독자의능력이 문제가 된다.

    감독은 사람도 중요하지만 기구로 해결해야 한다. 현행 감독체계는 일방적인 관주도다. 금융위, 증선위 위원들은 대다수가 공무원 지명직이고 민간출신은 거의 없다, 금융위원 7인 가운데 민간출신은 1명이다. 그러다보니 위원회가 정부의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소리가 많다.

    감독기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민간출신을 대폭 늘려야 한다.

    다섯째, 신용평가 기능을 재편 내지 강화해야 한다. 

    무디스, s&p 등 국제신용평가기관은 일종의 독과점 체제다. 그들은 신용평가가 잘못돼서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번 경우에도 리먼이나 메릴린치는 파산 직전까지 트리플A 등급을 받았다. 그러다 사태가 발생하고 나면 무더기로 신용등급을 강등시켜서 시장의 혼란을 부채질한다. 우리도 지난 외환위기 때 갑자기 신용평가등급을 내려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의 신용평가체계는 더더욱 문제가 많다. 몇 개 신용평가사의 독과점 체제인데다가, 피평가회사(일반적으로 채무자)가 평가 수수료를 지불하기 때문에 평가회사와의 유착이 발생한다. 평가회사는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좋은 등급을 주려는 경향이 있다. 그 피해는 투자자들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채무자가 아닌 투자자들이 평가를 의뢰하는 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채권발행시에 일정액을 부담시켜 기금으로 적립하고, 투자가들이 기금을 이용해 평가회사에 평가를 의뢰하는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KIC를 비롯한 국부펀드 육성 구상을 자제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직후에 KIC 위탁자금은 1천억 달러까지 늘려서 대규모 국부펀드를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메릴린치 20억불 투자도 이런 선상에서 추진됐다. 그러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중단된 상태다.

    국부펀드 구상은 대단히 위험하다. 국부펀드 운영자들은 민간투자은행 사람들 이상으로 책임이 없다. 모럴 해저드가 발생한다.

    현재의 다른 나라 국부펀드는 대다수가 산유국의 석유기금이다. 일부 비산유국이 있지만 중국같은 사회주의 국가, 싱가포르처럼 준사회주의 도시국가다, 우리하고 대만만 예외다. 선진국에는 국부펀드가 없다.

    연기금도 일종의 국부펀드다. 연기금도 관리체계, 운영체계를 다시 점검해서 위험한 투자를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일곱째, 정부조직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금융위기를 총괄할 컨트롤 타워가 없다, 기획재정부, 금융위, 한국은행 간의 협조체계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든 지적이 대단히 많았다. 금융위와 금감원을 분리한 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국내금융과 외환은 사실상 분리가 어렵다. 위기 시에는 총체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금융과 외환이 나뉘어 있어서 어렵다. 총괄책임을 분명히 하는 쪽으로 개선돼야 한다.

    또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들을 국회에서 다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김효석 민주정책연구원 원장 기자간담회 보도자료>

    • 관리자
    • Facebook Twitter KakaoStory Naver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