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천황봉에서 구정봉까지

  • 월출산은 천관산, 지리산, 내장산, 내변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 불린다. 강진과 영암에 걸쳐 있으며 주봉인 천황봉(809m)을 비롯하여  구정봉(703m), 장군봉(510m), 사자봉(667m), 향로봉(743m) 등을 품고 있는 영산이다. 1972년 ‘전라남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된 것을 시발로 이듬해 ‘전라남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월출산은 영산답게 많은 유물과 유적들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무위사 극락보전, 월남사지 삼층석탑(보물 제298호), 월남사지 진각국사비와 도갑사 해탈문, 마애여래좌상(국보 144호) 등이 있다. 월출산 산행기점은 ‘월남리 경포대’, ‘성전 신월마을’, ‘영암 천황사’, ‘영암 도갑사’ 등이 있으며 산행 코스로는  ‘경포대 순환 코스’, ‘도갑지구ㆍ 경포대지구’, ‘구름다리를 경유한 종주 코스’, ‘바람폭포를 경유한 종주코스’가 있다.


     ‘경포대 순환 코스’는 비전문 등산인도 어렵지 않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코스로 경포대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경포대계곡삼거리 →  약수터 → 경포대능선삼거리 → 천황봉 → 바람재삼거리 → 경포대계곡삼거리를 거쳐 다시 경포대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거리는 6.1km로 4시간가량 소요된다. 조금 더 산행에 욕심을 부린다면 바람재삼거리에서 구정봉을 거쳐 다시 바람재삼거리로 하산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도갑지구ㆍ경포대지구 코스’는 도갑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여 도갑사 → 억새밭 → 구정봉 → 바람재 → 경포대에 이르는 7km 구간으로 5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천황지구에 비해 가파르지 않으나 그리 쉬운 구간은 아니라는 평이다.


    ‘구름다리를 경유한 천황봉 코스’는 천황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하여 천황사 → 구름다리 → 천황봉 → 광암터(바람폭포)를 거쳐 다시 천황사로 돌아오는 구간이다. 월출산 산행의 대표적인 종주 코스로 길이는 총 9.4km이며 6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바람폭포를 경유한 종주 코스’는 천황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여 천황사 → 바람폭포 → 천황봉 → 구정봉 → 억새밭에 이르는 총 8.9km의 구간으로 산행에 6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경포대 순환 코스

    <오전 10시, 경포대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했다>


    오전 10시, 가마솥 찜통 같은 더위가 온 몸으로 전해져 온다. 이런 날씨라면 한시라도 빨리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상책일 것 같다.


    더운 날씨 탓인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경포대탐방지원센터 주변은 한산했다. 센터 직원이 “오늘은 너무 더워 산에 오른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인사말을 건넨다.


    매표소를 지나 나무다리에 이르자 피서를 즐기러 나선 가족들과 야영장을 찾는 피서객, 산행을 위해 등산복 차림을 한 등산객들이 서로 섞여 제법 많은 인파들이 눈에 띈다.


    나무다리를 지나 하늘이 보일락 말락한 나무숲에 들어서자 시원한 기운이 느껴진다.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피서를 즐기고 있다. 아이들은 계곡물에 들어가 물장난을 하고 있다. 나무다리에서 가까운 계곡에는 사람들이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우리와 같은 시간대에 이곳을 찾은 피서객들은 사람들이 적은 계곡 상류를 향해 무거운 짐 보따리를 옮기고 있다.

    <월출산 야영장이다. 사진에 담긴 내용으로 보면 텐트가 몇 개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카메라 후면 좌측에 대부분의 텐트가 몰려있었다.>


    야영장에 도착하자 야영장에는 20여 개의 텐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탓일까, 음식 냄새 사람 냄새가 풍겨온다.


    야영장을 지나자, 흙을 밟고 걸을 수 있었던 이제까지의  길과는 다른 크고 작은 돌들을 밟아가며 걸어야 하는 돌길이 나왔다. 발에 밟히는 돌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데  저급한 체력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앉을 수 있는 바위만 눈앞에 나타나면 그 자리에 앉고 싶었다. 그렇게 걷다가 쉬기를 반복하다 나처럼 길에서 쉬고 있는 등산객 한 무리를 만났다. 광주에서 온 ‘동백산악회’라고 했다.


    동백산악회는 광주 전역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산악회라고 했다. 오늘 등반에 참여한 회원들은 남녀 합해 총 8명으로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낮선 이에게 농담을 건넬 줄 아는 여유와 낮선 이의 농담도 받아줄 줄 아는 아량도 있는 것 같아 부담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동백산악회

    <월출산 약수터에서 동백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약수터에 이르러 시원한 약수로 갈증을 달래고 집에서 가져 온 물병에 물을 채운 다음 잠시 쉬고 있을 때 동백산악회 회원들이 도착했다. 필자는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후 그들과 함께 약수터를 떠났다. 짧은 대나무 숲을 지나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하늘이 잠시 열렸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이었다. 곧 바로 가파른 길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나무로 된 계단도 우리의 도전 과제였다. 걸을수록 맥이 빠지고 다리가 풀린다는  느낌이다. 중간에 한 번 쉬긴 했지만 그냥 주저앉고 싶다. 그런데 송형은 경포대 삼거리에서 가서 쉬자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계단 위를 올려다보니 환한 빛이 보인다. 이제 능선 가까이에 온 것 같다.



    경포대 삼거리

    <칠성부대 이름으로 된  리본을 달고 있는 송길용씨. 송씨가 칠성부대 자랑을 늘어놔 나는 송씨가 칠성부대 출신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송씨의 지인이 칠성부대 출신으로, 송씨는 지인의 부탁으로 이 리본을 달고 있었다고. 잠깐이지만 속은 이 느낌은...>


    경포대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정표가 보인다. 우측은 사자봉, 구름다리, 천황사로 가는 길이고 좌측은 천황봉, 바람재, 구정봉으로 갈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처음 예정대로 천황봉을 향해 길을 잡았다. 내가 잠시 멈춰서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을 때 뒤 따라오던 동백산악회회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천황봉 방향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의 모습도 눈에 띈다. 그 중 키보다 더 큰 배낭을 매고 내려오는 등산객의 모습도 보였다. 산악회 회원들의 눈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내게는 무모하게 보이는 저 큰 배낭이 산악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란다.


    월출산 능선에 올라서자 막혔던 시야가 탁 트인 느낌이다. 월출산과 조합된 강진과 영암의 풍경이 일부나마 시야에 들어온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몸의 열기를 식혀주고 있고 산 아래서는 뜨겁게 피부를 괴롭히던 햇살이 이곳에서는 따갑게 느껴진다.



    월출산 통천문

    <길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거치고 난 후에야 그 모습을 보여준 통천문 >


    쇠파이프로 연결된 난간에 의지해 능선 오르내리기를 몇 번 반복하자 이번에는 이번 산행의 최대 복병,  통천문을 통과해 천황봉으로 가기위한 마지막 의식, 길고 가파른 나무 계단이 나타났다. 몇 걸음 옮기다가 계단에 앉아 쉬고, 다시 오르다가 쉬기를 몇 번 반복하다 마침내 통천문에 도착했다.


    통천문을 통과하자 나무 계단으로 만들어진 짧고 가파른 내리막길이 보인다. 이제부터 좀 쉬운 등산길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런데 우리가 내려가는 길을 올라오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먼저 천황봉을 다녀 온 등산객들이었다. 그들은 천황봉이 멀지 않았다고 필자에게 용기를 주고 지나갔다. 그들의 격려 때문이었을까 이 구간에서 천황봉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천황봉

    <월출산 천황봉 표지석>


    안전하지만 아찔한 계단을 지나자 평평하고 넓은 암반이 나타났다. 이곳은 월출산 주봉인 천황봉이다. 천황봉은 해발 809m로, 동시에 3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방이 탁 트여 월출산의 기암괴석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다. 그런데 인위적인으로 설치한 것인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지석이 같은 자리에 서서 사방을 조망할 수 없게 방해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참나리꽃

    <매끄러운 숙녀의 피부같은 참나리꽃>


    천황봉을 내려서자 길가에 오롯이 피어있는 참나리 꽃이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등산객의 눈에 쉽게 띄는  천황봉이 싫어서인지, 아니면 모진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인지 그 내밀한 속사정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주변 잡풀에 비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그 모습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너무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에 자꾸만 눈길을 주게 된다.


    구정봉을 향해 가는 길은 기암괴석의 전시장이다. 내 발길이 머무는 곳에 따라 내 눈길이 향하는 곳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기기묘묘한 암석들의 형상이 억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이 겪었을 온갖 풍상을 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비록 아주 오래 전 그들이 겪었을 잃어버린 신화는 되찾을 수 없겠지만 아주 먼 미래에도 지금처럼 이곳을 찾는 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의연한 모습에 경외심와 존경심을 보낸다.

    돼지바위

    <돼지를 닮지 않은 돼지바위>


    작은 안내판 앞에 등산객들이 발걸음을 멈추어 서있다. 좌측에 보이는 돼지바위에 대한 설명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 상상력이 부족한 탓일까 이리보고 저리보고 다시 보아도 돼지를 닮은 것 같지 않다. 돼지바위란 이름은 나보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 지은 것 일 텐데 시간과 계절을 달리해 이곳을 다시 찾는다면 나도 돼지바위의 의미를 깨닫게 되지나 않을까.

    남근석

    <남성의 심볼을 닮은 남근석>


    돼지바위에서 조금 더 내려가자 남근석이란 안내판이 있다. 남근석 이라고? 잠시 동안 안내문을 보고 엉뚱한 곳에서 남근석을 찾았다. 그러다가 남근석이 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 모양이 마치, 건강하고 튼실한 남성의 심볼을 보고 어느 조각가가 그 모습 그대로 조각해 놓은 것 같았다. 정력이라면 빈대도 마다하지 않을 우리나라 남성들의 로망이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귀두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름 모를 잡초가 자라고 있어 그 해학적 의미를 더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뒤로 돌아가 남근석을 다시 보자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정면에서 보았던 모습과 후면에서 본 모습은 판이하게 달랐다. 월출산 바위들이 보여주는 이런 모습 또한 이 산을 찾는 등산객을 유혹하는 또 하나의 매력일 것이다.


    바람재

    <바람재에서 본 경포대 방향. 이곳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재에 들어서자 경포대 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의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곳에서 오늘 산행을 마쳐야 할지 구정봉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경포대로 하산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 결정의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몸은 힘들겠지만 오늘 구정봉에 가지 않는다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몰라 구정봉까지 갔다 오기로 했다.


    바람재에서 구정봉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다만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라 조금 더 힘들었을 뿐.



    <나그네에게 그늘을 제공해 주는 소나무>


    구정봉 가는 길섶에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나그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는 소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이 능선에 뿌리를 내리고 이만큼 성장할 때까지 얼마나 모진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까.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다.

    베틀굴

    <옛날 아주 먼 옛날 베를 짰다는 베틀굴>


    난간에 의지하여 가파른 암봉을 하나 더 오르자 옛날 베를 짰다는 전설을 간직한 베틀굴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굴은 협소하고 빗물로 오염돼 이곳에서 베를 짰다는 전설이 그냥 전설이었을 것이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오염된 물이 굴 내부에 고여있어 베틀굴의 신비감을 반감시키고 있었다.


    베틀굴에서 암반을 타고 10m 쯤 오르면 구정봉에 이르게 된다. 구정봉 정상에 오르려면 첫 암반에서 좌측 길을 따라 내려갔다가 작은 구멍을 통해 구정봉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용 대신 올챙이가 살고있는 구정봉 웅덩이>


    구정봉 정상은 넓은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바위에 발을 걸친 다음 양손으로 바위를 짚고서야 오를 수 있었다. 구정봉에는 용이 살았다는 전설을 지닌 9개의 단지 모양의 웅덩이가 있는데 구정봉 정상에는 빗물이 가득 차 있는 커다란 웅덩이 하나만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 웅덩이에는 이미 오래 전 집을 떠난 용 대신 올챙이 가족이 살고 있었다.


    천황봉의 진정한 위용은 구정봉에서 느낄 수 있었는데 구정봉이 낮은 만큼이나 천왕봉은 더 오뚝하고 장대해 보였다.


    <글ㆍ사진 : 윤승현>

    • 관리자 news@jeo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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