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2014 아르코미술관 특별전... '미술을 위한 캐비닛, 아카이브로 읽는 아르코미술관 40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 아르코미술관은 개관 4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미술을 위한 캐비닛, 아카이브로 읽는 아르코미술관 40년>을 오는 10월24일부터 11월30일까지 아르코미술관 1F 스페이스필룩스와 2F 아르코아카이브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舊 국립예술자료원)과 아르코미술관 아카이브가 소장해온 전시 아카이브 가운데 약 450여점을 선별하여 공개한다.

    1974-2014 아르코미술관 40년
    1974년 미술회관이라는 이름으로 관훈동 舊 덕수병원 건물을 임차하여 운영을 시작하고, 1979년 現 동숭동에 김수근의 설계로 신축개관을 하기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은 한국 국·공립·사립 미술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장소에서 미술의 중심이 통과하는 자리에 있다. 아르코미술관은 대관전시에서 기획전시 위주의 공간으로 변모하면서 2000년대 이후 급격한 전환을 맞이했다. 이는 아르코미술관의 역사 뿐 아니라 197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제도권 미술계의 지형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40년 전시의 역사 재구성
    아르코미술관은 1974년 개관 이래 현재까지 대관전을 포함하여 약 2,000여회의 전시를 개최해 오고 있다. 창작 발표 공간이 부족했던 1970-8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미술회관(아르코미술관 전신)은 작가들에게 저렴한 대관료로 전시 장소를 제공하고 미술활동을 지원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마로니에미술관, 아르코미술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름전>, <중진작가초대전>, <대표작가전> 등의 기획 전시에 무게 중심을 옮기면서 현장의 요구에 부합하려는 노력을 보여 왔다.

    본 전시는 미술회관 시대(1974-2002), 마로니에미술관 시대(2002-2005)를 거쳐 현재 아르코미술관 시대(2005-현재)에 이르는 미술관 40년 전시의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의 예술적 사건들을 재구성한다. 전시를 문화적 창조물로서 인식하면서 아르코미술관 보여줬던 전시를 통해 우회적으로 문화예술 변동의 증후들을 살피는 자리를 마련한다. 본 전시가 구축하는 <미술을 위한 캐비닛>은 한국 미술사의 한편을 자리해 온 주요 전시 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잊히거나 사라졌던 프로젝트 등에 관한 구술 인터뷰와 다양한 형식의 아카이브들이다. 이는 사실과 기억, 비평이 서로 얽혀 생성되는 관계적 의미의 망을 형성하기 위함이다. 아르코미술관은 올해 초부터 예술자료원의 협조로 1970-90년대까지 전시 자료들에 대한 분석과 연구 작업을 진행하고 미술 현장을 함께했던 예술인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해 왔다.

    이번 전시는 큐레이팅이라는 개념이 전무했던 1970-80년대, 소그룹을 중심으로 사회와 관계했던 작가들의 활동을 재조명하는 <<만남의 미학>>, 1990년대 신세대 미술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를 살피는 <<신세대 : 시간표도 없이, 깃발도 없이>>, 마지막으로 2000년대 이후 하나의 문화이자 매체로서 작용하기 시작한 ‘전시’에 대한 집중탐구 <<문화적 복합체, 전시>>등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 전시구성 및 주요 자료 소개

    섹션 1. 만남의 미학
    관훈동 미술회관은 총462회의 대관전시와 8회의 기획전시를 유치하면서 1970년대 척박했던 한국 미술계에 중요한 전시공간으로 기능했다. 미술회관이 이관한 197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 미술사에서 유례없이 집단적 미술운동이 전개되었다. 초기 미술회관의 활동은 보다 널리 전시를 수용하기에 당시 70년대 실험적 현장의 작가들과 반드시 일치된 행보를 보인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미술회관에서 벌어진 다수 작가들의 전시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채 사라지거나 잊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상미회>(1976), <혜화동화실동인>(1980-1982, 1987), <82 현대회화>(1982-1983), <그룹 농>(1981-1982) 등과 같은 크고 작은 소그룹 단체들은 동료들과 연대하며 그들의 개별적 미술언어를 발현시키고자 했고, 작가 윤석남(1982)을 비롯한 신진 예술가들은 미술회관에서의 첫 개인전 무대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미술계에 알렸다. 특별히 섹션 1에서는 무산된 <현실과 발언 창립전>(1980)에 대한 재조명과 함께 미술회관의 전시 활동을 한국 정치적, 문화사회적 상황과 아르코의 역사적 맥락 안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지방작가초대전>은 지방에 거주하는 작가들에게 적극적으로 미술창작발표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한 전시이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1974년 제1회 초대전을 진행한 이후 문화 예술계의 높은 평가를 받아 정규 사업으로 확장되었다. 지역간의 균형적인 발전과 중앙 집중적 문화예술 현상의 극복이라는 <지방작가초대전>의 취지는 문예중흥장기계획의 목표와도 부합하는 내용이다.
    <제2회 지방작가초대전>홍보 현수막, 흑백사진, 1975

    <한국현대미술-오늘의 방법>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미술회관 신축을 기념하기 위한 첫 기획 전시회다. 추진위원회의 위원은 박서보, 이세득, 서세옥, 정관모, 이일, 박래향 등으로 구성되었다. 선정한 작품들을 통해 과거의 기법이나 범주를 벗어나 실험적인 표현방법과 새로운 형식의 실태를 압축해서 조명하고, 동시대 한국미술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오늘의 방법'은 '변화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한국현대미술-오늘의 방법 I>, 흑백사진, 1979 (국가기록원 제공)

    1980년 미술회관에서 개막을 준비하고 있던 <현실과 발언 창립전>이 개막 당일 미술회관 운영위원회의 취소로 무산되었다. ‘두 세계 사이’는 불 꺼진 아르코미술관 전시장을 배경으로 창립전 멤버였던 김정헌, 민정기, 윤범모가 80년대 활동을 회고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카메라는 세 명의 주위를 원형을 그리며 천천히 돌아 과거로부터 현재의 시간으로 걸어온다. ‘현실과 발언’이 지향한 가치와 활동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를 동시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전소정, <두 세계 사이 (현실과 발언 라운드 토크)>, 싱글채널비디오, 2014

    섹션2. 신세대 : ‘시간표도 없이, 깃발도 없이’
    자본주의 경제의 급성장과 소비문화의 정착과 더불어 1990년대 미술화단에서는 다원화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20-30대 젊은 작가들은 자유롭고 적극적인 자세로 작업에 임하며 한국 현대미술계의 지각 변동을 이끌어 냈다. 소위 신세대 작가로 불리는 이들 젊은 예술가군은 장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탈장르 예술을 실험하거나 인터넷, TV 등 테크놀로지나 대중매체를 활용하여 미술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신진작가 발굴과 지원을 목적으로 한 <신세대미술흐름전>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신체”, “기술”, “엔트로피”, “믹서앤쥬서” 등 매년 다른 주제로 현대사회가 직면하는 문제를 다양한 미술의 각도에서 짚어보고자 했다. 이들 전시에서는 본격적으로 커미셔너가 전시기획에 참여하여 동시대 미술과 큐레이팅에 대한 다양한 논평이 전개되기도 했다. 이불(1995), 공성훈(1996), 임민욱, 함경아(1999), 양혜규(2002) 등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40대 작가들은 그들의 성장기에 <신세대흐름전>을 거쳐 간 이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섹션 2. 신세대 : ‘시간표도 없이, 깃발도 없이’에서는 1990년대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름전> 전시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과 이슈를 당시 미술가, 커미셔너, 평론가들의 인터뷰로 재구성한 영상 아카이브와 기획자의 전시서문, 평론글, 현장 사진 등을 묶은 전자북을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

    1990년대 현대미술에서는 신체 이미지 또는 신체의 직접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신체와 인식>은 ‘신체의 도상학적 해석’, ‘신체와 인식’이라는 두 가지 맥락에서 작가들이 신체에 반응하는 작업을 다뤘던 전시다. 미술평론가 유준상이 커미셔너로 전시를 기획하고 강성원, 권여현, 이불, 홍성민 등 17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back from the future - 우리의 신세대 미술인’은 1990년대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름전>에 참여했던 미술가, 커미셔너, 평론가들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영상 아카이브다. ‘신세대’를 둘러싼 예술가들의 생각과 이야기, 계속해서 태어나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대를 옛 신세대 작가들을 통해 들어본다.
     

    섹션 3. 문화적 복합체, 전시
    미술회관은 1999년에 큐레이터 시스템을 도입, 2000년대 이후부터는 큐레이터에 의한 자체 기획전 비중을 높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미술회관은 2002년 마로니에미술관으로, 2005년 아르코미술관으로 명칭을 각각 변경하면서 공공미술관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큐레이터의 목소리가 반영된 전시는 비로소 하나의 매체이자 문화로 작용했으며, 미술관은 우리시대를 반영하는 담론의 생산처이자 대중과의 소통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아르코미술관(마로니에미술관)은 박현기, 이승택, 김구림, 신학철 등 그 예술성에 비해 미술사적 조명이 부족했던 작가들을 소개하는 <대표작가전>, 권부문, 이옥련, 최민화, 정정엽 등 한국 미술화단의 허리를 책임지는 중진작가들에게 신작 발표의 기회를 제공해온 <중진작가초대전>, 동시대 주요 이슈를 전시 주제로 발전시키는 <주제기획전>, 외부 기획자의 실험적 전시를 지원하는 <기획공모전>, 미술을 매개로 타국가와의 문화교환을 주도하는 <국제교류전> 등 다양한 전시 형식과 장르로 대중들과 조우해 왔다. 섹션 3은 사람과 사물과 공간이 상호 작용하는 역동적인 문화 복합체 ‘전시’에 대해 탐구하는 자리다. 아르코미술관이 추구해온 유형별 전시들을 기반으로 서고를 뒤져 찾아낸 문서, 시각자료들을 통해 과거 전시를 이해하는 단초들을 수집하고 재구성하고 있다. 오히려 이 과정은 미술관 전시를 통해 축적되는 다양한 범위의 아카이브가 시대의 기호와 감각의 층위로 구성된 ‘전시’를 다층적으로 해독하기 위한 중요한 기록물임을 인식케 한다.

    2001년 미술회관은 단색회화가 화단을 지배하던 1970년대 초 ST그룹 작가들과 함께 해프닝, 이벤트 등의 행위예술을 실험했던 작가 성능경의 개인전을 개최하여 미술계의 반향을 이끌었다. 미술회관은 개막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성능경 작업을 보는 세가지 논점>이라는 심포지엄과 <성능경 포럼>이라는 온라인 종합토론을 진행하여 전시회를 보다 생산적인 담론의 장으로 확산시켰다.

    재료에 대해 끊임없는 탐구와 독특한 개념성을 기반으로 탄탄한 작업세계를 구축해  왔던 이기봉의 개인전으로 국내 미술관에서는 최초로 개최되었다. 대형 설치작업 ‘Cloudium’을 위해 작가는 무용가 정영두와 협업하여 그의 작품이 가진 복합적 의미를 신체의 언어로 표현했다.

    • 관리자 news@jeo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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