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비 이어 해남 우수영 충무사 원설립지 이전

  • 문내면 동외리 이전 이번달부터 일반에 개방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해남 충무사가 명량대첩비 원설립지로 이전을 마치고, 일반에 개방된다.

    해남군은 지난 2011년 원설립지 이전을 완료한 보물 제503호 명량대첩비에 이어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충무사 건물의 문내면 동외리 이전을 마무리했다.

    보물 제503호인 명량대첩비와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는 1964년 명량대첩비가 위치한 문내면 학동리에 건립됐다. 숙종 14년(1688년) 문내면 동외리에 세워진 명량대첩비는 일제 강점기 강제로 뜯겨져 서울 근정전에 묻혀 있던 것을 해방이후 주민들의 노력으로 되찾아오는 과정에서 1950년 원래의 자리가 아닌 학동리 청룡산에 자리잡게 됐다.

    이후 경술국치 100년과 명량대첩비 이전 60년을 맞아 지난 2010년부터 명량대첩비의 원설립지 이전 사업이 추진되면서 2011년 문내면 동외리의 원설립지터로 비와 비각이 우선 이전됐다.

    충무사는 사당과 외삼문 등 건축물 5개동과 강강술래마당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내년에는 건축물 단청보수와 함께 학동리에 남아있는 충무사 비석군 30기에 대한 이전 작업도 실시할 계획이다.

    이번 충무사 이전이 완료되면서 명량대첩비의 역사적 전통성을 회복하고 관련 시설들을 한자리에서 둘러볼 수 있게 돼 우수영 마을이 살아있는 역사교과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군은 지난 4월 28일 충무공 탄신일에 준공식을 겸해 제472주년 다례제를 개최하고, 관람객들이 불편함없이 충무사를 방문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 나가기로 했다.

    보물 제503호 명량대첩비

    숙종 14년(1688년) 세워진 ‘통제사충무이공명량대첩비(統制使忠武李公鳴梁大捷碑)’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정유년(1597년) 9월 16일 우수영 울돌목에서 거둔 명량대첩을 기록한 것이다. 높이 2m 67cm, 폭 1m 14cm로 상부의 12자 전액(篆額)은 김만중의 전서(篆書)이고, 문장은 이민서, 글씨는 이정영의 해서(楷書)다.

    비문은 1686년 쓰여 졌으나 2년뒤인 1688년 3월 전라우도수군절도사 박신주에 의해 세워졌다.

    명량대첩비는 이순신이 원균의 무고로 통제에서 물러났다가 원균의 패전으로 다시 기용되어 명량해전에서 몰려오는 133척의 왜적함대를 12척의 전선으로 크게 무찌른 대첩을 기념하는 내용이다.

    비문에는 이순신이 재기한 직후 큰 기적을 올린 대회전(大會戰)으로 충무공이 세운 전공의 중흥이라 일컬으며, 충무공의 용병과 지리에 뛰어남은 귀신도 감동케 하였고, 또 공의 난을 당하여 적을 토벌함에 있어 책략을 결정함이 특출함은 옛 명장들도 이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충의의 분발은 해와 달을 꿰뚫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명량대첩비는 1965년 보물 503호로 지정되고 1975년 성역화를 위한 조경사업을 시작해 충무공 탄신일에 故 박정희 대통령이 친필한 충무사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매년 4월 28일 제향(祭享)하고 있다.

    명량대첩비는 국가적 재난이 예상될 때면 땀 흘리듯 검은 물이 흘러나온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1950년 6.25와 1980년 5.18때도 이러한 현상이 있었는데 이충무공의 충정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관리자 news@jeo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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